인성쇼파공장 7화

세상은 조금씩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기 시작했다.

by 선지혜

“다음엔 더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기차역에서의 이별은 늘 아쉬웠다. 서울로 돌아가는 인성을 애경은 플랫폼 끝까지 배웅했다. 기차가 멀어질수록,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애경 씨, 오늘도 안녕하셨습니까. 일은 고되지만, 애경 씨 생각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다음 만남을 기다립니다.’

화려한 꽃다발도, 달콤한 속삭임도 없었지만 편지 속 삐뚤빼뚤한 글씨는 애경의 마음을 매번 푹 파고들었다.

“애경 씨. 나 아직 가진 게 없어서 화려한 결혼식은 지금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

식은땀을 흘리는 인성의 말끝은 떨렸고, 흔들리던 눈빛으로 머뭇거리던 애경은 이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좋아요. 같이 살아요.”

애경은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인성의 단칸방으로 짐을 옮겼다. 옆집엔 언니 명심이 있어 애경에게는 친정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바쁜 언니를 도와 조카들을 돌보고, 일자리도 알아보며 하루를 바삐 보냈다. 밤이면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퇴근하는 인성을 맞이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그 말 한마디에 인성은 하루의 고단함이 녹았다.

찰박, 찰박—. 어느 주말 저녁, 부엌에서 들리는 우당탕 소리에 인성이 애경을 찾았다.

“애경아, 뭐 해?”

“응, 오빠^^ 멸치 볶으려는데 너무 더러워서 씻고 있어.”

해맑은 얼굴로 멸치를 헹구는 애경을 보자 사랑스러움에 인성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고, 이 사람아. 그게 다 맛인데, 물에 씻으면 안 돼. 그냥 털어내면 돼.”

애경은 손에 쥔 바가지를 내려놓으며 얼굴이 빨개졌다. “몰랐지 뭐…”

부엌일에 서툰 애경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인성이 말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당신은 공주처럼 가만히 구경만 해~”

인성은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시작했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된장 한 숟갈 풀고, 두부 한 덩이를 퐁당 넣자 부엌에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애경아, 이리 와서 먹자.”

식탁 위에는 된장찌개 한 냄비와 소주 한 병이 놓였다. “오빠, 진짜 요리 잘한다.” 서툴고 어설펐지만 매일 웃음이 되었다. 함께 입은 앞치마엔 새 삶의 숨결이 자라나고 있었다.


신혼생활이 익숙할 즈음 애경은 몸이 이상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라 여겼지만, 병원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순간 숨이 멎었다. 결혼식은 아직인데, 아이부터 오다니. 기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애경이 인성에게 임신을 고백했을 때, 벌겋게 달아오른 인성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와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고마워. 애경아”

그 한마디에는 인성의 지난 세월이 전부 묻어있었다. 내 방 한 칸 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 가난한 꼬마에게 애경과 아기는 빛이었고 희망이었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였다.


8월. 매미 울음이 끈질기던 한여름 새벽, 애경의 배가 굳게 뭉쳤다.

“오빠… 애가 나오려나 봐!”

인성은 허둥지둥 그녀를 부축해 병원으로 달려갔다.진통은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늘이 노랗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의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리고—


“응애—”

세상을 찢는 울음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4킬로그램, 건강한 딸이었다. 인성은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받아 안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경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인성을 바라봤다.

“오빠, 생일 선물 받았네.”

애경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웃음이 섞여 있었다. ‘우리 딸… 네가 우리 집 첫 불빛이야.’

말없이 아기를 바라보는 인성의 창문 너머로 여름 햇살이 스며들었다. 세상은 조금씩 그들에게 자리를내어주기 시작했다.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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