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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an 09. 2019

양말 신은 강아지, 행복이

양말 신은 강아지, 행복이

'소형견보다 대형견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  당연한 이야기다. 


일단 많이 먹고(돈이 많이 든다), 힘이 세다(컨트롤이 쉽지 않다). 대형견이기 때문에 가지는 매력이 무한하지만, 소형견과 비교했을 때 힘과 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소형견을 선호하는 이유다. 대형견인(30킬로임) 행복이와 함께하며 애로사항이 참 많다. 그중의 한 가지는, '파워'가 너무 강력해서 생기는 고충들이다. 연약한(?)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울 때가 많다.


저 싸이 얼굴만 한  두툼한 앞발 좀 보셔요. 한대 치면 퍽 하고 쓰러질 것 같아요

집에 도착하면 어멍이 반가워 미친 듯이 달려들고, 가끔 앞 발을 번쩍 들어 가슴팍까지 뛰어오른다. 인이 백인 나도 어쩌다 한 번씩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다. 손님이 방문했을 때, 대개는 이런 행복이를 보고 기함하기 마련이다. 대형견을 키워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익숙한 체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려인이 되기 전, 저런 상황에서 어떤 리트리버가 '제자리로 가서 앉아' 하는 주인의 한 마디에 바로 얌전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모든 리트리버가 그런 줄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저게 결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행복이 옆에 있으니 우리 하늘이는 콩알로 보이는군요

이빨은 또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간식 주려다 손가락을 물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연히 물려는 의도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다만 음식 앞에서 차분해진다는 것이 행복이에게는 어려운 일일 뿐. 그래도 나름 훈련을 받아 '기다려~' 정도는 한다. 귀찮은 어멍이 잘 써먹질 않아 그렇지. 집에 놀러 온 한 지인은 행복이가 송아지 목뼈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걸 보더니 무시무시한 광경이라며 입을 떡 벌리기도 했다. 소형견들은 오랜 시간 갉아먹어야만 하는 뼈다귀도 몇 번 씹으면 그만이다. 대형견 이빨의 '파워'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대, 중, 소 싸복이네 삼 남매 꿈나라 여행 중

발톱은 또 어떠한가. 잘못해서 행복이 발톱에 할퀴면 피를 볼 수도 있다. 언젠가 여름날, 집에 놀러 온 친구 목에 붉고 선명한 손톱 자욱을 길게 남겨, 몹시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이 손톱의 위력은 스스로에게(행복이)까지 큰 피해를 남긴다. 강아지들은 가려운 곳이 있을 때는 주로 발과 발톱을 이용해 긁는다. 문제는 힘 조절이 잘 안 되는 데 있다. 집에 들어가면, 얼굴 주변에 못 보던 상처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백 프로 자기 발톱으로 긁다가 생긴 상처다. 싸이도 얼굴을 종종 긁지만 단 한 번도 생채기가 난 적이 없다. 얼굴에 난 상처는 좀처럼 낫기가 쉽지 않다. 상처 난 곳을 매번 다시 긁어 점점 더 상처가 커지기 때문이다. 방법은 넥 카라를 씌우는 것뿐인데, 불편할 게 뻔해서 좀처럼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 써야 씌우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원래는 아주 작은 생채기였던 상처가 반복된 발톱질(?)로 인해 이만큼 까지 커졌다

내 고민을 들은 직장동료가 말한다. '발톱을 좀 갈아주는 건 어때?' 나는 그저 씩 웃었다. 행복이 발톱 깎기가 조금 과장해서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 강아지들은 원체 손발 만지는 걸 싫어하는데, 행복이는 평균보다 더 싫어해 발톱을 깎으려면 사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발을 사정없이 휘둘러 대는 행복이를 힘으로 제압하고 발톱을 깎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 발톱을 간다고? 


뒷발에 양말 신고 무념무상에 빠진 행복이.

그래서 요즈음 행복이는 양말을 신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깔때기형에 처해야 하나보다 싶었던(넥 카라를 씌운다는 이야기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뒷발에 양말을 신기는 건 어떨까. 예전에 발바닥을 하도 핥아 궁여지책으로 넥 카라를 씌우는 대신 양말을 신겨본 적이 있었다. 행복이가 몹시도 둔한 아이라, 양말을 신겨도 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싸이 같으면 예민해서 양말 신기는 건 생각도 못했을 텐데. 생각해보니 얼굴의 상처는 뒷발로 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직접 본 적이 없어 추정일 뿐이지만). 그래서 뒷발에만 양말을 신겼다. 깔때기 형에 처하는 것보다는 행복이도 만족도가 높아 보인다. 이럴 땐 무던한 행복이의 성격이 퍽 도움이 된다. 내 보기엔 충분히 용을 쓰면(?) 얼마든지 벗을 수 있으련만, '그냥 뭐 양말을 신었나 보다'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집구석이 엄청 넓은데 꼭 왜 거기서 그런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는 건지

행복이는 다소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으나, 나는 꽤 만족스럽다. 효과가 제법 좋아, 상처가 잘 아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잔병치레 많아 요모조모 늘 살펴야 하는 게 일인데 이젠 하다 하다 양말까진 신긴다. 손 갈데없는 싸이와 달리 참 손이 많이 간다. 


우리 행복이는, 양말 신는 강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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