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어렵사리 완차코에 도착한 나와 민혁이는 정갑이 형을 만나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확실히 해변의 도시답게 해산물을 정말 많이 팔았다. 부산 사나이이지만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난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까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름 푸짐한 저녁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다가 보이는 뷰의 식당에서 말이다. 사실 어느 식당이든 다 바다가 보이긴 했다. 그러고 보니 중남미를 와서 처음으로 보는 바다였다. 비릿한 바다내음을 들이켜고 있으니 마치 고향집 부산을 와 있는 느낌이 들어서 정겨웠다.
완차코는 생각보다 너무 정겹고 따뜻한 동네였다. 특히나 호스텔 주인분이 굉장히 친절하신 분이라 3박 4일을 머무는 동안 너무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아직도 그 친절함이 기억나는 것을 보니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완차코에 머물면서 페루 여행을 위한 재정비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간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지냈기 때문에 여행의 탠션이 조금 늘어지는 듯했다. 물론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사실 이때 내가 느낀 것은 너무 수동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유는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 자꾸 그들에게 의지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의 MBTI는 ENFP로 N과 P는 70~80% 정도가 되는 만큼 극단적이었다. 특히 P적인 성향이 굉장히 짙기 때문에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내 옆에 J의 성향이 짙은 정갑이 형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의 방향이나 여러 결정은 거의 다 형이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에 킬로토아를 갔던 것도 그렇고, 바뇨스에서 영어를 배운 것도 민혁이가 해 보자 제안했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이번에 완차코 또한 정갑이 형의 선택이었기에 여행 내내 내가 한 선택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이제 두 사람과 떨어져서 여행을 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던 지점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전부터 그렇게 느끼고 있었지만, 완차코에서 확실히 결정했던 것 같다. 물론 두 사람과 여행해서 너무 즐거웠고, 또 너무 편했지만 여행이 편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난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에 애써 두 사람과 따로 행선지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완차코에서는 2박 3일을 머물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 더 머문 이유는 정갑이 형 때문이었다. 아니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비체 때문이었다. 다음날 점심쯤 우린 로컬 식당에서 식사를 한 번 해 보자고 하여 골목 어귀를 걷다 한 식당을 발견한다. 꽤 허름한 동네 구멍가게 같은 식당이었다.
식당을 들어가니 일단 파리들이 많아서 속으로 '위생이 별로 안 좋겠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었던 우리들은 남미가 다 그렇지 뭐 하는 생각에 그냥 여기서 먹어보기로 했다. 이유는 가격이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뉴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바로 페루의 명물인 '세비체'였다.
세비체는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페루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어패류가 값싸고 풍부해 다양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데 그중 세비체가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침회?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생선살, 오징어, 새우, 조개 등을 얇게 잘라서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후 잘게 다진 채소와 함께 소스를 뿌려 차갑게 먹는 음식이다.
나도 페루는 세비체가 유명하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한 번 먹어볼까 싶었다. 비록 해산물을 별로 선호하지 않을 뿐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싫은 음식도 몇 있지만 회는 꽤 잘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온 순간 단 한 입도 댈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렸기 때문이다. 한 그릇에 3,0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난 그냥 3,000원을 버리고 말지 이걸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이드로 나온 감자튀김만 주워 먹었다.
반면, 정갑이 형과 민혁이는 엄청 잘 먹었다. 맛있다며 잘 먹는데 난 도저히 못 먹겠어서 그저 그들이 먹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사단은 그날 저녁에 발생했다. 아마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비체를 먹은 저녁, 정갑이 형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배탈이 났는지 연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몸에 열까지 나는 바람에 우리는 완차코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세비체 안 먹길 잘한 것 같다...(제대로 된 곳을 가면 엄청 맛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민혁이는 괜찮을 걸 보고 이 녀석 위는 강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완차코에 머물면서 서핑도 할 수 있었다. 호스텔 주인아저씨가 추천해 주셔서 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투르히요 시내를 나가 장을 보고, 쇼핑도 했다. 오랜만에 대도시를 와서 그런지 이것저것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아디다스 매장을 들렀는데 직원들이 엄청 열정적으로 일해서 뭔가 덩달아 신났던 게 생각난다.
거기서 아주 마음에 드는 바람막이를 하나 발견하여 구매하게 되었다. 이 바람막이는 앞으로 있을 여행에서 아주 유용하게 잘 입어서 너무 잘 샀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입고 다녀서 애착 바람막이가 되었다.
그렇게 3박 4일간 완차코에서 지내며 페루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떠나는 날 호스텔 주인분의 딸과 아들이 와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딸이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해서 드라마 이야기를 좀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민호를 가장 좋아한다는 게 생각난다. 지내는 내내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항상 잘 들어주시고, 또 버스 예약하는 것도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1박을 함께 지냈던 프랑스 친구도 함께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완차코를 떠나게 되었다.
이제 우린 페루 두 번째 도시인 와라즈로 이동하게 된다. 와라즈까지는 그리 멀진 않지만 고산지대라 길이 험해서 조금 걱정됐다. 하지만 이제 남미여행 2개월 차에 접어들었기에 그 정도는 익숙해져야 생각했다.
와라즈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