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Feb 25. 2024

2박 3일간 마추픽추 잉카 트레킹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쿠스코에 도착한 지 5일째 되던 날 드디어 우린 마추픽추가 있는 곳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굳이 잉카트레킹을 선택하여 2박 3일간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면서 즐겁고 힘들게 가야 했다. 아침 일찍 숙소 앞에 봉고차 한 대가 와 있었다. 그걸 타고 출발했다. 차에는 우리 네 명 말고도 다른 나라 친구들이 많았다. 봉고차는 무려 3대가 함께 이동하였고, 2박 3일간 함께 트레킹을 하는 사람은 무려 20명이 넘었다.


첫 번째 액티비티는 바로 산악자전거였다. 봉고차를 타도 산을 엄청 오랫동안 올라갔다. 거의 해발 4,000m까지 올라갔다. 거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3시간 정도 내려오는 걸 하게 됐다. 산악자전거라고 했지만 사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달리는 거라 그리 위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침이기도 했고, 워낙 고도가 높다 보니 안개가 많아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볼리비아 라파즈에는 데스로드라는 게 있었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죽음의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절벽이 바로 옆에 있는 산악길을 타고 내려오는 액티비티였다. 실제로 거기서 추락하여 죽은 사람이 몇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과연 여기서는 안전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마음 상태로 막상 출발하려 하니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체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니 뭔가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안갯속을 달리다 보니 온몸이 다 젖었다. 우비를 입었음에도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니 우비는 무용지물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긴장한 상태로 계속 자전거를 타는데 속도가 붙을수록 점점 무서워졌다. 워낙 상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여기서 차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를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결과는 그냥 죽음이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잠시 쉬기로 했다. 계속 비를 맞으니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영웅이와 성진이는 더는 타지 못하고 포기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더 타다 보니 안개가 걷히고 눈앞에는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멋진 광경을 만끽하며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자전거를 저렇게 달고 다님 ㅋ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타서 그런지 완전히 뻗어버렸다. 다음 액티비티는 래프팅이었는데 자전거의 여파가 너무 커서 우린 스킵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난 이미 에콰도르에서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했다.


저녁쯤 다른 친구들이 숙소로 돌아왔고, 우린 근처에 있는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은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 컸고 물도 따뜻해서 피곤했던 몸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남자 넷이서 장난도 치고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하루 종일 움직이고 이동하며 지쳤는데 온천을 하고 나니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한 두어 시간 정도 놀다가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몸이 좋지 않기 시작했다. 약간의 감기기운이 생기면서 온몸이 나른해졌다. 이거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감기약을 먹고 빠르게 잠에 들었다.


이때만 해도 좋았징


다음날, 다행히도 몸은 조금 호전되어 계속 트레킹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의 감기기운이 남아 있어 계속 약을 먹으며 이동했다. 이제 우린 마추픽추가 있는 오얀타이 땀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동하던 중간에 또 다른 액티비티를 했다. 짚라인이었다. 은근히 겁이 많은 난 짚라인을 막상 타려고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 와중에 영상을 남기고 싶어서 한 손엔 고프로를 들고 탔다. 나름 스릴 있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전 날 비가 와서 그런지 타고나니 온 얼굴에 기름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총 3가지 액티비티를 1박 2일 동안 이동하였다. 마추픽추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보통은 기차를 타고 오얀타이 땀보에서 아구아스 깔리엔떼까지 가는데 우린 기차가 아닌 걸어서 이동하게 되었다... 기차로 가면 20~30분이면 가는 길을 걸어서 가니 몇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솔직히 속으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걸어가는 사람도 좀 많았고, 산길을 걸어가니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데 꽤 멋졌다. 하지만 속으론 저걸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텐데... 같은 생각을 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걸으며 성진이 영웅이 병준이와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남미를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건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서로의 걸음의 속도가 다르다 보니 점차 멀어져 갔다.


기차오는 모습 멋진데 영상 올리긴 귀찬..

난 원체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걸음걸이도 느린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른 애들은 저만치 앞에 가 있게 됐고 나만 뒤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고산병 증세였다. 그래서 갖고 있던 타이레놀을 먹고 소로체도 먹었는데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 길 옆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던 다른 한국인 여행객이 상태를 물으셨고, 남은 타이레놀을 건네주셨다. 고마웠다 ㅠㅠ 역시 한국인의 정이란 ㅠㅠ


그렇게 약 6~7시간을 걸은 끝에 드디어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깔리엔떼에 도착할 수 있다. 작은 도시이고 험준한 산속에 숨어 있는 듯해서 마치 요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을 중간엔 기찻길이 나 있어서 그 길로 매 시간 기차가 지나다녔다. 뭔가 신비스러운 도시였다. 그렇게 우린 내일이면 마추픽추를 가게 된다. 그런데 그곳까지 가려면 1시간가량 산을 또 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버스를 타면 되는데 왜 또.....


버스를 타면 꼬불꼬불 올라가고 걸으면 초록색 길로 간다 하지만 차가 훨씬 빠르다 당연하지..


나는 정말 버스를 타고 싶었다. 그런데 젊은 패기의 청년들은 모두 걸어서 올라간다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것도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출발한다니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힘든데 별 수 없었다. 거 참 마추픽추 보기 힘들구만!!




새벽 5시 반 정도에 기상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밖을 나섰다. 밖을 나가니 여전히 깜깜했다. 함께 마추픽추를 오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입구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약 6시쯤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더 가파르고 힘든 산행이었다.


힘들어 죽으려 함


원래 걸음이 느린 나는 한참이나 뒤처진 상태로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 너무 많아 올라가다가 쉬고 또 오르다 쉬기를 반복했다. 거의 1시간 30분 정도 오른 것 같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곳곳에 안개가 뿌엿게 끼여있어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안개 때문에 마추픽추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산을 오르면서도 조금 걱정했다. 그렇게 힘들게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이미 친구들은 다 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안개 때문에 마추픽추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투어를 해 준 가이드가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영어로 해줘도 뭔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더라. 정신없고 힘들어서 일단 바닥에 주저앉아 쉬기로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돌덩이를 보려고 2박 3일 그 개고생을 한 건가...?? 돈까지 내고..?? 약간의 현타가 밀려왔다.


페루 여인들과.. ㅋㅋㅋㅋ


그로부터 30분 후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마추픽추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는 뭔가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게 많았던 마추픽추였지만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도 있었다. 함께 2박 3일간 같이했던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쉬면서 투어를 이어나갔다.


고대 잉가 문명이 자리 잡은 이곳을 내 두 발로 걸어서 올 수 있었다는 게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나는 이곳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저 돌덩이들로만 보였던 이유와 그 이유들이 허전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마도 잉카 문명에 대하여 더 나아가 왜 이들이 스페인어를 쓰게 됐으며 그들의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었다면 그저 돌덩이들로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그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안개가 걷히고 드러낸 마추픽추!!




2박 3일간의 마추픽추 잉카트레킹을 마치고 이제 다시 쿠스코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가는 길마저 걸어서 가야 하니 이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하산하는 것도 걸어서 내려가야 했고, 다시 몇 시간을 걸어 차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더욱더 힘들었다. 그래서 우린 완전히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렇게 오후 늦게 차에 도착하게 되었고, 우린 쿠스코까지 그 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가는 내내 잠에 든 우린 어느 순간 눈을 떴는데 그 순간 창 밖의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벅차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우린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한가운데 있었으며 산 꼭대기까지 올라와 있었다. 산 밑으로 보이는 굽이굽이 펼쳐진 도로와 그 뒤로 펼쳐진 안데스 산맥은 솔직히 마추픽추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했다. 아쉽게도 이미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자기기는 모두 방전이 되어 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하지만 그 광경과 그때의 그 공기 그리고 약간의 어지럼증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몸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박 3일간 함께한 친구들




쿠스코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우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이내 잠에 들었다.


마추픽추 투어는 여기서 끝이 났다. 이제 페루에서의 시간도 끝에 다다랐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우유니 소금사막이 있는 볼리비아이다. 내가 남미를 온 이유이자 가장 기대하고 고대했던 우유니 소금사막이 이제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전 23화 세상의 중심 공중도시 쿠스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