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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Apr 25. 2024

아르헨티나 여행의 시작 살타와 코르도바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아주 오랜만에 동행이 생겼다. 페루 쿠스코를 떠난 후로 간간히 있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정도만 같이 다녔을 뿐 줄곧 혼자서 여행을 해 왔었다. 특히 볼리비아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심심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여행지에 있으면 동행자들이 생길 수 있지만 도시나 나라를 이동하는 중에는 동행을 만나기 쉽지 않다. 특히 이동거리가 긴 남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동 중에는 항상 위험하다. 특히 버스를 탈 때면 항상 짐이 잘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 자물쇠로 의자와 짐을 묶어 놓기도 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동 중에 혼자라면 늘 긴장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한 번 큰 일을 겪고 난 후로 늘 주위를 경계하고 또 조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도 더 이상 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새로운 동행과 나라를 이동하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큰 일없이 무사히 이동하길 바랄 뿐이었다.




우린 칠레 아타카마를 떠나 아르헨티나 살타라는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셋이 함께 이동하는 거라 수언이와 단비가 함께 앉고 나는 혼자 앉았다. 거리는 버스로 약 8시간 정도 걸렸다. 오전 일찍 출발하여 약 4시간 정도 지나니 국경이 나왔다. 항상 국경을 넘는 건 약간 긴장된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지금까지 다른 남미 국가들은 국경을 건널 때 검문이 그렇게 빡세지 않았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달랐다. 일단 탑승객 정원이 내려야 했다. 그리고 짐들을 모조리 꺼내어 안까지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에 짐을 함부로 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찝찝했다.


출국과 입국은 큰 문제없이 지나갔고 우린 다시 버스를 타고 살타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확실히 아르헨티나로 넘어오니 뭔가 다른 남미 국가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약간의 유럽풍의 느낌도 나고 인종도 백인이 많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살타는 굉장히 정돈된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타에 도착하게 되니 시간은 거의 오후 4~5시 정도가 되었다. 미리 예약을 해 둔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환전을 하기 위해 나가려 했다. 그런데 호스텔 주인장이 저녁을 함께 먹을 예정인데 혹시 같이 먹을 거냐고 묻기에 우린 좋다고 했다. 그렇게 환전을 하기 위해 나갔다가 다시 호스텔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라 해가 지기 전에 얼른 귀가했다.


8시까지 숙소로 귀가하니 이미 식사는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인 셋 뿐만 아니라 스위스에서 온 친구, 독일에서 온 친구, 멕시코에서 온 친구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자신들의 나라를 뽐내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싸이가 가장 인기 있었다. 강남스타일이 대대적인 유행을 끈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리아 하면 강남스타일이 절로 따라왔다.


살타 호스텔에서의 저녁 파티!


강남스타일을 틀고 같이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호스텔 주인이 우쿠렐레로 레게 음악을 들려주는데 소울이 미쳤다. 완전 소울풀해서 진짜 멋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을 때까지 우린 먹고 마셨다.


다음날 번화가로 나가서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소고기와 와인을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젤라또도 먹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또 한 번 더 놀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받진 않았다. 소고기 러브 와인 러브 싸고 맛있어서 행복했다.


사실 살타는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니지만 볼리비아와 인접해 있어서 우유니를 들리는 사람이라면 살타를 거쳐 가게 된다. 하지만 특색이 있어 보이지 않아 대체로 딱 1박 2일만 지내고 지나가는 도시 중 하나이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그래서 그날 저녁 버스로 다음 여행지인 코로도바로 떠나게 되었다. 코르도바를 갈 생각은 없었는데 살타에서 멀지 않았고, 우리의 이동 동선 위에 있었던 곳이라 들리게 되었다.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대신 유명 대학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지내는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인이나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린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혼자 다닐 땐 숙소를 잘 예약하지 않고 그냥 다녔는데 j인 성향인 친구와 다니니 항상 숙소를 예약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코르도바에 숙소를 예약했고, 그 속소는 우리가 지금까지 갔던 숙소 중에서 TOP 3안에 들만큼 너무 좋았다. 숙소가 좋아서 코로도바에 더 머물게 되었다. 정말 사람 냄새나는 그런 곳이었다.


살타에서 먹은 소고기 레스토랑 진심으로 너무 맛있었다




코르도바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아갔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했고, 비가 그치니 엄청 더웠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꽤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렵사리 도착한 그곳은 부부가 운영하는 2층 가정집이었다. 아들과 딸도 있었고 당시에는 부부 사장님의 부모님도 와 계셨다. 호스텔에 투숙객은 없고 가족들 뿐이었다. 그리고 두 명의 스텝이 있었다. 방은 2층에 남자방 그리고 여자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머리 할아버지가 바로 나와 축구를 본 메시 팬!
항상 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했다.


코르도바에서는 4박 5일 동안 지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밖을 잘 돌아다니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호스텔에서 놀았다. 무엇을 하고 놀았느냐 하면 젠가 같은 보드 게임을 주로 하고 놀았다. 나와 단비 그리고 수언이 이렇게 셋이 있었지만 수언이는 일정이 짧아 이틀 만에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주로 나와 단비 그리고 스텝인 두 친구와 주로 놀았다. 젠가 놀이를 하며 한국 vs아르헨티나전으로 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VS 한국 젠가 대결


코르도바에서 4박 5일을 지내면서 근처 맛집도 찾아다니고, 나름 잘 돌아다니며 놀았던 것 같다. 그중에 몇 가지 기억이 남는 게 있는데 하나는 바로 축구이다.


당시 난 아스날을 응원하는 구너였다. 그리고 그 당시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라갔다. 상대는 아르헨티나 메시가 있는 바르셀로나였다. 그런데 호스텔 주인 할아버지께서 메시의 열열한 팬이셨다. 그래서 그는 바르셀로나를 응원하셨다. 우리 둘은 늦은 저녁 티브이 앞에 앉아 서로의 팀을 응원했다. 대화가 1도 안 되는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와 한국에서 온 20대 젊은이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축구를 봤다. 결과는 메시의 2골로 바르셀로나 승...!


축구가 끝난 후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계~속 메~~시 2골~~!!! 메~~시 2골~~!! 하시면 계속 놀렸다. 좀 킹받아서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해 봐야 못 알아들을 걸 알아서 그냥 웃으면 넘겼다. 그 모습을 보신 할머니는 고만 좀 하라는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등짝을 때리셨다.


이곳에서 축구를 봤다. 지금 보니 티브이가 굉장히 작다.




코르도바는 사실할 게 별로 없는 도시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대혁명가 체 게바라의 생가가 있는 도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체 게바라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의 평전을 읽게 됐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도 보게 되었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조금만 알아보고 찾아봤으면 가 봤을 텐데 당시엔 여행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어딜 가는 것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 나를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호스텔 스텝으로 일하는 친구 Eliana였다. 그녀는 평소에는 말수가 없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향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며 저녁에 함께 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뭐 하고 놀 거냐고 물으니 클럽을 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역시 젊은이의 도시답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망설였다. 크... 클럽이라니 ㅋㅋ 그것도 아르헨티나?? 괜찮을까??


Jennifer Eliana 단비 그리고 나
클럽 들어가기 전 맥줏집


단비에게 물으니 의외로 그녀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졸지에 아르헨티나 클럽을 가게 되었다. 나와 단비 그리고 두 명의 아르헨티나 여자 애들과 함께 시내에 있는 클럽 근처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어갈 시간을 기다렸다.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이 잘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밤 10시쯤이 되었을까? 우린 드디어 클럽에 입장하게 되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남미 특유의 흥 넘치는 음악과 조명들이 현란하게 비췄다. 엄청 독한 술을 권해서 마셨는데 죽을 뻔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뭔가 되게 재미있었다. 한 가지 놀랐던 것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얌전한 Eliana는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한 마리의 야생마가 되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Eliana와 나
클럽에서 ㅎㅎ


우린 구석에 서서 사람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며 약간 사이드에서 돌며 술만 홀짝홀짝 마셨다. 솔직히 너무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힘들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단비를 보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제 집에 가자고 말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가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처음 방문했던 남미 클럽이었지만 많이 즐기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그 분위기를 나름 즐긴 것 같아 조금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녀들은 해가 뜬 아침이 되어서야 숙소로 복귀하였다.


나 Eliana 그리고 단비
아르헨티나 클럽 분위기 죽임




코르도바에 있으면서 시티투어 버스도 타고 공원도 많이 갔다. 공원이 많다 보니 산책도 자주 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주에서 워킹을 했고 그전에는 한국에 있었는데 지금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코르도바라는 낯선 도시에서 이름 모를 공원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스텝 세바스티안! 나보다 먼저 호스텔을 떠났다


그 순간이 너무 이질적이고 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삶은 참 이렇듯 기대한 것과는 달리 흘러가기도 하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연속되지 않는 비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면서도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줬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매일 산책한 공원들


그렇게 의외로 길었던 코르도바에서의 4박 5일을 보낸 후 우린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호스텔을 떠나는 날 너무 정들었던 숙소 주인아저씨 아줌마와 그리고 그의 아들 딸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너무나도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호스텔 알로하,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술집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기에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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