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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l 13. 2020

소개팅을 주선받았는데 은행 경비원이라 했더니 까였어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나이가 서른이 넘으니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음 어떻게 그렇게들 짝을 만나 결혼까지 하는 걸까.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결혼이라 과연 이 생에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지만 아니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비혼 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그럴만한 여건도 그럴만한 사람도 아직 없을 뿐이다. 갑자기 눈에서 땀이 나는 건 기분 탓일까.(읭)


부산을 한 번씩 내려가면 엄마는 슬쩍 나를 떠본다.


“다음 주 엄마 친구 딸 결혼한다고 대구 간다~”


난 속으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왜 말하는 거지?' 하고 생각한다.


“엄마는 언제 딸 같은 며느리 보노~”


엄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발언을 했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며느리는 그냥 며느리지 무슨 딸이야. 물론 딸이 없는 엄마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만 며느리는 무슨 죄냐.


아주 가끔 소개팅을 해보지 않을래? 하고 주변 지인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망설이게 된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나의 직업을 설명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이, 직업, 외모로 상대를 판단하는 면에선 내가 가진 스펙은 정말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개팅은 딱 한 번 했다. 서른세 살에 소개팅을 한 번 해 본 솔로는 아마 엄청 드물 것이다. 이런 나에게 왜 소개팅을 받지 않냐고 지인이 물으면 난 뭐라 답을 해야 할까. 그냥 딱딱한 자리가 싫다고 넘긴다.


네이버 카페에 청원경찰들(은행 경비원)만 모인 곳이 있다. 그곳에선 서로 일을 하며 겪는 고충이나 고민 그리고 일을 할 때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질문 등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주 올라오는 질문 중에 결혼에 관한 질문이 꽤 있다.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올렸다. “소개팅을 주선받는데 은행 경비원이라고 했더니 까였어요.” 하는 글이었다. 그래, 내가 저래서 소개팅을 안 하는 거다. 저렇게 까이면 상처 받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괜히 자존감만 상하고 기분만 나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드니까.


글에는 주로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직업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안 만나는 게 좋습니다." 또는 "자기는 뭐 얼마나 좋은 직장 다니길래 만나지도 않고 직업만 듣고 깔 수가 있냐" 그런데 원래 소개팅이란 게 대부분 그렇지 않나. 외모, 나이, 직업을 보고 먼저 판단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저렇게 까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런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은행 경비원이라서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다. 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하신 분들은 투 잡을 하시는 분이 많다.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하는 사람은 또 다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직업이 좋은 면도 있다. 은행 경비원 인대도 결혼을 하는 사람은 외적인 것과 능력보다는 사람 자체를 보고 결혼하는 거니까 말이다. 확실히 믿고 거를 수 있는 기준이 분명하니까 나를 알아줄 수 있는 진짜 좋은 사람과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문제는 아직 없다는 거지만 말이다...)





가끔 결혼정보회사 같은 곳에 가입해서 인연을 만난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인들끼리 하는 소개팅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혼을 전문적으로 매칭을 시켜주는 회사로 내가 원하는 조건을 요구하면 그에 맞는 사람을 찾아 매칭을 시켜준다. 일하기도 바쁘고,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그만큼 시간도 들고,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결혼정보회사에서 대신해준다. 언뜻 보면 아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이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 볼까 하고 생각하지만 원래 내가 하기 귀찮고 싫은 일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발생한다. 밥을 해 먹기 귀찮아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꽤 비싸다. 하물며 나의 배우자를 찾는 일인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최소 200만 원은 든다고 하니 나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비용이다. 사실 가입비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의 조건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는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연봉이 얼마인지 그리고 신체조건은 어떻게 되는지부터 부모님의 재력까지 평가한다고 한다. 등급은 1등급에서 최대 15등급까지 있다. 남자와 여자의 등급 조건은 다르다. 남자는 사회적 능력을 가장 우선으로 평가받는 반면, 여자는 가장 먼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님의 능력을 가장 먼저 평가받는다. 그리고 두 번째가 외모이다. 마지막이 자신의 능력이다. 남자 1등급은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이다. 여자 1등급은 부모님이 장차관급 공무원, 자치단체장, 1000억 원 이상의 재력가, 강남 대형 병원장이다. 그럼 가장 낮은 15등급 남자는 일반 중소기업 정규직이고 여자는 무직이다. 남자인데 비정규직인 나는 아예 등급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합리적인 면에선 합격점을 줄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할 배우자를 찾는 일을 내가 하지 않고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나 자신의 등급을 매겨 줄을 세워 놓고 누가 누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재보는 게 과연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해야 할 행동일까? 결혼이 급한 30대 남녀는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 망설이게 된다. 지금 이 사람과 연애를 하면 결혼까지 생각을 해야 할 나이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돈과 관련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만약 그런 고민 없이 만났는데 그런 문제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모두 헛것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선 결과로 가기 위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연인과의 만남조차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을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직은 결혼보다는 사랑을 하고 싶다. 물론 그럴 나이는 지났지만 나이를 생각하고 조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고,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마도 그런 사람은 소개팅이나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나기 힘들겠지? 아. 어쩌면 결혼정보회사에서 남자 비정규직이 등급에도 없는 이유는 사회적인 조건이 되지 않으니 그런 것 보단 마음을 먼저 보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이렇게 정신승리를 해본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태어는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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