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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22. 2020

팀장님은 왜 그럴까?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꼭 한 명은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마치 불변의 법칙처럼 어디든 누구를 만나든 꼭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처음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땐 다 좋은 사람 같았다. 물론 내가 좀 순진한 면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일도 수월해질 때쯤 팀장님과 잦은 마찰이 있었다.      


내가 있던 지점은 객장과 ATM기기를 사용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ATM기기로 가려면 객장 문을 열고 나가서 오른쪽에 있는 자동문을 열고 가야만 한다. 동선도 길고 문을 2개나 열고 나가야 하니 생각보다 번거롭다. 한두 번 가는 거라면 모르지만 하루에도 수 십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다리도 아프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손님들은 기계를 만지다 잘되지 않으면 항상 나를 찾으신다. 그럴 때마다 항상 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한다. 사실 ATM 업무 담당은 내가 아닌 출납 계장이다. 하지만 계장님은 손님을 받아야 하니 ATM 업무는 거의 내 업무나 다름없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엄연히 내 일이 아니니 아무래도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나 보다. 하루는 팀장님이 ATM기기 옆에 비치된 팸플릿의 유무에 대해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희재 씨 여기 희재 씨 담당 아니야? 왜 이렇게 관리가 안돼? 여기 팸플릿은 왜 다 비어있어? 없으면 채워 넣어야지.”

“팀장님 여기 담당은 제가 아니라 출납 계장인데요.”

“그래서 희재 씨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 아니야? 네가 가장 많이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럼 알아서 채워 넣어야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그 후로 내가 늘 채워 넣게 되었다. 사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만하다. 어쨌든 내 담당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팀장님이 나를 싫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많았다. 예를 들어 그녀는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에도 불만이 있었다. 한 번씩 나에게 말을 예쁘게 할 수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이게 나의 최선이다. 난 예쁘게 하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가 옆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난 경상도 남자는 정말 질색이야.”     


응 나도 당신이 질색이야. 사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팀장님의 망언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사진


때는 겨울이었다. ATM기기로 가려면 객장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객장 문을 열면 바로 밖이라 엄청 춥다. 지점 안은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 따뜻하지만 그에 비해 ATM실은 아무리 히터를 세게 틀어도 객장만큼은 따뜻하지 않다. 그래도 바깥보단 따뜻했다. 

하루는 팀장님이 ATM실로 오시더니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희재 씨 여기 히터 틀었어? 왜 이렇게 추워 관리 안 해? 손님들 춥다고 하시겠다. 얼른 틀어.”

“손님들 춥다고 안 해요. 바깥보다 여기가 따뜻해서 오히려 따뜻하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얇게 입고 나오시면 당연히 춥죠. 그냥 옷을 입고 나오세요.”     


팀장님은 손님들께 춥지 않냐고 물었지만 손님들은 괜찮다고 했다. 민망했는지 얼른 객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이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생각 없이 그냥 내뱉은 거니까. 그냥 원래 생각이 없는 사람인 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팀장님이 정말 생각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때는 곧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지만 팀장님은 크리스마스라고 지점을 좀 꾸며보자고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을 다이소에서 사 와 객장과 ATM기기에 오려서 붙이는 짓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도 응대하면서 팀장님이 시킨 것들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팀장과 파트타이머 직원이 같이 와서 도와줬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이 이런 막말을 내뱉었다.     


“희재 씨 오늘 씻고 나왔지? 왜 이렇게 냄새가 나? 그래서야 여자를 만날 수 있겠어?”     


난 엄청 잘 씻는다. 찝찝한 걸 누구보다 싫어해 여행을 다닐 때도 숙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씻는 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은 여름보다 땀이 많이 났다. 여름에 은행을 와보셨는가? 에어컨을 엄청나게 틀어놔 춥기까지 하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히터를 엄청 틀어서 덥기까지 하다. 그런데 난 ATM기기에 자주 왔다 갔다 하니 추웠다 더웠다를 계속 반복하니 땀이 났다가 식었다가 했다. 그래서 약간 쉰내가 났던 거 같다. 그런데 왜 꼭 젊고 예쁜 파트타이머 여직원이 있는 옆에서 그런 소리를 한 걸까? 난 그런 팀장의 말에 민망하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주 투명스럽게 말했다.     


“저 여자 친구 있는 데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냄새나서 여자도 만나지 못하는 놈이 될 것만 같았다. 당시에는 그냥 팀장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 후로 지점 사람들은 다들 내가 여자 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알게 뭐람. 이 사건 이후로 나 또한 팀장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진 그래도 꾸역꾸역 참을 수 있었다. 마지막 사건이 터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빡침을 알리는 그림

  

난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서 5시 30분이면 퇴근을 한다. 보통은 5시면 일이 다 끝나 30분이 되지 않아도 그냥 갈 때가 많다. 다들 그래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이 오늘은 퇴근하지 말고 회의할 때 좀 남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회의를 하는데 왜 남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남아라고 하니 남았다. 


5시 35분쯤 다들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종이를 나눠줬다. CS평가지였다. 거기엔 등급과 점수 그리고 순위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팀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나를 딱 지목해 CS 점수가 낮다면서 엄청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딱히 은행원들도 CS 점수가 좋진 않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전에 있던 직원보다 내가 점수가 낮게 나와서 딱 나를 지목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은행 경비원이 왜 CS점수 대상인지도 모르는데 그게 낮다고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무안을 주는 건 진짜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엔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내가 대들면 싸울 거 같았다. 그래서 그때도 참았다. 하지만 속에선 무안함과 민망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쌓였던 게 곧 폭발할 거 같았다.     


이대로 이렇게 있을 순 없었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기회가 왔다. 때는 새해가 밝았고, 지점에도 인원이 바뀌었다. 원래 있던 사람 중 몇몇은 떠나고 몇몇은 새롭게 합류했다. 회식 때를 노렸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그래도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고기를 마음껏 먹고 술도 마시며, 새로 온 직원들과 대화도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내가 슬그머니 팀장님 옆으로 가서 술을 한 잔 권했다. 그러고 나서 그동안 내가 느꼈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제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서 팀장님이 그렇게 대 놓고 말하면 저도 상처 받습니다. 저는 그냥 팀장님이 저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사실 난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려나? 아니면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하려나?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엔 꼭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런데 팀장님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희재 씨.. 난 그런 줄 몰랐어. 진짜 미안해. 그랬구나. 내가 좀 말을 생각 없이 하기는 해. 미안해.”     


갑자기 엄청 사과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사과를 하시니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때까진 팀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했던 말은 내가 싫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었다. 사실 팀장님은 내가 느끼기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어 가끔 아니 자주 말실수를 하곤 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성격이 급하고,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화해


그 후로 팀장님과는 엄청 친해졌다. 점심밥 조를 한동안 같이해서 점심을 늘 같이 먹었고, 그러다 보니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만약 그때 팀장님이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아니꼽게 봤다면 아마도 사이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일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사과를 하셨던 팀장님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린 상대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상대가 직장 상사라면 수직구조의 조식 사회에선 밑에 사람은 상사로부터 받은 상처를 그냥 묻어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한 번이면 그나마 괜찮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면 힘들어진다. 그럴 때면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 단, 상황과 환경을 봐가면서 상대가 무안하지 않고, 차분히 그리고 정중히 말을 꺼내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용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럼에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짜 개새끼인 것이기에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당신이 상사라면 회식 때만큼은 마음을 열고 밑에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줄 수 있는 아량을 보여준다면 밑에 직원들도 자신을 따를 것이다. 팀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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