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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06. 2020

은행 경비원의 첫 시작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 경비원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2016년 12월 겨울이었다. 한 달 동안 했던 편의점 야간 알바를 그만두고 은행 경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월화수목금 밤을 새우며 일하다 보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일상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 금세 그만두고 말았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일이 고작 은행 경비원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꽤 괜찮은 일로서 느껴졌다. 적어도 야간에 일하지 않아도 됐고, 은행이란 곳이 주는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있었다. 당장 내야 할 월세가 6개월치 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 먹을 점심값도 없어 엄마가 준 신용카드를 써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의지를 해야 하는 건지 답답하고, 한심했다. 이런 나를 억지로라도 이끌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4년이 지난 2020년에도 은행 경비원을 하고 있을 줄은 그마저도 잘려서 백수가 될 거라고는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고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첫 은행은 마포역 근처에 있는 H은행이었다. 15층짜리 건물 1층에 위치한 그곳은, 3층부터 15층까지는 중견기업이 있는 큰 빌딩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낙성대역이어서 마포역까지 가려면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다. 2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려 5호선 마포역까지 가야 했다. 대략 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영등포구청역 환승구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꽤 많이 걸어야 했다. 그리고 마포역은 역의 특성상 깊어서 개찰구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두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두 번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아침 9시까지 은행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면접을 봤다. 면접자는 나와 또 다른 남성 딱 둘 뿐이었다.


은행 2층 로비에 앉아 있으니 여자 직원이 나를 안내해 줬다. 그리고 두 명의 여직원이 면접을 봤다. 그들의 말로는 그날 지점장님이 출장을 가셔서 수신계 차장님과 과장님 두 분이 면접을 봤다. 한 명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차장이란 사람이 정장을 입었던 사람이고 과장이란 사람이 유니폼을 입었던 사람이다. 두 사람 다 안경을 썼으며,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차장은 조금 차가운 인상이었고, 과장은 뭐랄까. 좀 까다로운 인상이었다. 면접은 딱히 별거 없다. 그냥 사는 곳이 어디고, 지금까지 뭐 하다 왔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여자 과장은 내가 부산에서 왔고, 집이 사하구라는 말을 듣곤 자기 시댁이 그쪽이라며 명절이면 그곳을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갑다고 했다.(이게 반가운 일인진 잘 모르겠지만) 면접은 대략 15분 정도 본 것 같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본 남자는 원래 요리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요리가 적성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다가 일단은 돈을 벌면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은행 경비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사람과 지하철역까지 갔다. 그는 말했다.     


“사실 여기 지원했지만 별로 할 마음이 없어요. 그냥 한 번 해봤는데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일단은 왔는데 여기보다 그냥 다른 일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아마 님이 일하시게 될 거 같네요. 축하해요.”     


의아했지만 뭐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격은 그날 오후에 났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나와서 일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은행 경비원 생활은 별일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간단히 씻고, 아침은 가볍게 거른 후 7시 10분쯤 집을 나서 낙성대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전날 왔던 길이라 찾아가는데 문제는 없었다. 마포역에 도착하니 8시였다. 8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20분쯤 지점으로 향했다. 여기까진 별문제 없었는데 셔터가 내려진 은행 앞에 서니 정작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업체 팀장에게 물어보니 그도 모른다며, 은행 직원분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물어보라 했다.(여기 업체는 진짜 관리도 못 하고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입구를 알려 달라고 했다. 빌딩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유리문이 있는데 그곳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면 됐다. 그렇게 나의 첫 출근은 시작되었다.     


내가 일했던 은행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층은 수신계, 2층은 대부계였다. 1층엔 총 은행원 5명 그리고 은행 경비원 1명, 2층엔 은행원 4명 총 11명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지점장은 남자분이셨고, 그 밑으론 대부계 남자 차장 그리고 수신계 여자 차장 두 명이 실세였다. 대부계에는 남자, 여자 대리 각 1명씩 있었다. 수신계에는 여자 과장 1명 대리 2명 계장 1명이었다. 남자가 총 4명 여자가 총 7명이었다. 이곳에서 난 10개월간 일하게 된다.      



첫날은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빌딩 특성상 내가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은 은행원뿐만이 아니었다. 빌딩 로비에는 빌딩 경비원 아저씨가 있었고, 은행 뒷문에는 주차장 관리원 아저씨도 있었다. 난 그 두 분과도 친하게 지내야 했다. 특히 주차장 관리원 아저씨는 일 한지 워낙 오래되셔서 친하게 지내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도움이 됐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임자는 그곳에서 1년 6개월 정도 일을 했다고 했다. 그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보컬이었다. 키는 180이 조금 안돼 보였고, 생김새는 약간 날카로워 보였지만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꽤 진중하면서도, 장난기 있는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아주 상세히 많은 것들을 알려줬다. 특히 사람들에 대해 알려 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때는 12월이라 다음 해에 직원들이 많이 바뀐다고 했다. 가장 먼저 지점장은 곧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부계 차장은 볼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2층에 계시기도 하고, 늘 일이 많아 정신이 없다고 했다.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셔서 가끔 같이 피웠다고 했다. 난 담배를 피우지 않아 별로 교류가 없을 거라 했다. 대부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중요한 것은 수신계였다. 일단 여자 차장, 이 사람을 조심해야 했다. 직원들의 만인의 적이었다. 그녀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전임자는 차장을 극도로 싫어했고, 곧 나도 싫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여자 과장, 이분 또한 곧 다른 지점으로 갈 사람이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 대리 둘, 한 명은 키가 크고, 다른 한 명은 통통했다. 두 분 다 성격이 좋다고 했다.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했다. 마지막으로 막내 여직원, 특히 막내 여직원과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막내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됐다고 했다. 상고를 졸업해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은행에 취직해 이제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입이라고 했다. 실수를 많이 해 자주 혼나는데 그때마다 달래 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ATM기는 총 두 대였고, 그것은 뒷문에 있었다. 하루 내방하는 손님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많이 오면 100명, 평균 50-60명이라 했다. 그래서 여유시간이 많아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손님이 적으니 할 일도 많이 없다고 했다. 가끔 은행원들의 심부름이나. 우체국을 가는 것 정도가 다라고 했다.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혹시나 일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줬다. 친절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그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며, 일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 후에도 그와는 꽤 친하게 지냈다. 사는 곳이 가까워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3살 아래라 그가 나에게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연락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는 그래도 꽤 친하게 지냈다.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일단은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한시름 놓았다. 앞으로 매달 고정적인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니 월세를 밀릴 일도, 밥값을 해결하기 위해 엄마 신용카드를 꺼낼 일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알 수 없는 불안이 다시금 나를 덮쳤다. 한 해가 곧 지나가는 시점에서, 과연 내년에 난 어떤 내가 되어 있을지, 지금 일하는 이곳에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후로 4년 동안 은행 경비원으로 지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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