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 식도염이 심해져 커피도 끊었고 술도 끊었다. 그 좋아하는 커피와 와인이 의외로 어렵지 않게 끊어졌는데 감자칩은 포기 못하겠다. 감자칩을 끊어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줄여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평소 음식에는 되도록 양념을 줄이고 간단하게 소금 후추로만 간을 하며 저염식을 추구하지만 음식에서 줄인 소금은 감자칩으로 섭취한다. 친구가 그랬다, 너는 감자칩 먹으려고 다른 음식 다 싱겁게 먹는 거야?라고. 나트륨 섭취를 늘리지 않고 감자칩을 즐기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랄까.
나의 감자칩 사랑은 영국 유학생활을 하며 증폭되었다. 가난했고 바빴다. 학교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고 갤러리 인턴쉽을 하면서 포기한 것은 따뜻한 밥이었다. 대신 2-3파운드로 밥 한 끼는 어림도 없지만 슈퍼의 뚱뚱한 감자칩은 살 수 있었다. 한국의 감자칩은 공기가 더 많이 들었다고 불평하지만 그에 비하면 유럽 감자칩은 봉지 끝까지 가득 차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감자칩 한 봉지를 사면 마음이 든든했다. 커다란 볼에 담아 노트북으로 영국의 케이크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다. 감자칩을 먹으며 영국의 크림 가득한 케이크를 굽는 베이커들의 화면을 보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 나였다.
한국의 포카칩과 독일이나 영국의 감자칩의 소금양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베를린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하나같이 독일 감자칩이 너무 짜다고 말한다. 아마도 독일 감자칩 중 '소금맛'은 다른 양념이 덜 들어가고 소금만 들어가기에 더 짠맛이 강조되는 것 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과자의 종류도 많고 어디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제품도 매년 등장하고 유행의 바람을 일으키는데 독일은 심플하다. 봉지에 들어있는 것은 감자칩이나 땅콩과자 같은 '짠맛'의 과자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수천 가지 버전의 버터 쿠키와 초콜릿이다. 즉, 봉지과자에서 단맛이 나는 것은 캐러멜맛 팝콘 정도만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감자칩이라는 독일 단어 '카토펠칩 Kartoffelchip'이라고 쓰면 무조건 감자를 얇게 썰어 튀긴 과자여야 한다. 그러니 프링글스와 같은 제품엔 카토펠칩이라고 쓸 수 없는 것이다. 슈퍼마켓에 가면 독일 브랜드는 물론 Lays와 같은 미국 대기업의 브랜드, 영국 Kettle 등 수십 개의 감자칩이 있고 그와 더불어 건강함을 강조하는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운 감자칩도 있는데 자세히 봐야 한다. 그들의 표지에 '카토펠칩'이라고 쓰여있지 않으면 한 번쯤 성분표를 봐야 하는 것이다.
감자칩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성분은 당연 감자이고 두 번째로 해바라기유가 대부분이다. 요즘엔 팜유도 안 쓴다고 광고하기 때문에. 그런데 오븐에 구운 감자칩이나 프링글스는 첫 번째 많이 사용된 성분이 감자가루다. 가루로 칩 모양을 빚어 만든 과자이다. 맛이 다른 건 당연하고 추가되는 시즈닝도 많다. 감자칩 자체가 건강에 매우 안 좋은 음식이니 어떤 게 더 건강하다 덜 건강하다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단지 소비자의 취향의 차이로 나뉠 뿐이겠지. 알면서도 혹시나 오븐의 구운 감자칩을 샀는데 역시나 맛이 없다. 100그람당 100칼로리나 차이가 나길래 시도해 봤는데 역시 기름에 튀긴 고칼로리가 맛있는 것은 몸이 안다.
몇 년 전에는 '감자칩 달력'을 만들었었다. 한 봉지 먹을 때마다 기록했고 1년이 지나니 내 감자칩 소비량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1주일에 한 봉지, 맥주 많이 마시는 여름철이나 파티 많은 연말엔 더 늘어나서 1년에 약 60-70 봉지를 먹는 셈이었다.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감자칩만 끊으면 살도 빠지고 더욱 건강해지겠지만 감자칩은 내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음식이라 끊을 수 없다고. 내 소울푸드는 저렴하고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효율성으로는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