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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독일

by 조희진

첫 코로나로 앓았을 때 난생처음 겪는 인후통이 잊히지 않는다. 누가 그랬던가 칼로 맞는 기분이라고. 정말이지 가만히 누워있어도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는 고통스러운 일주일이었다. 잊지 못할 그 통증을 엊그제 다시 겼었다. 처음엔 감기나 몸살이라고 할 수 없이 '목'만 아팠는데 코로나의 인후통처럼 목구멍 한 곳이 찌른 듯이 아팠다. 다행인 것은 이번 인후통은 12시간 아프고 지나갔다. 그리고 시작된 몸살 같은 증상. 열과 오한이 시작되며 끊임없이 콧물이 흘렀다. 짧고 굵은 인후통으로 시작해 몸살로 끝나는 것이 올 겨울 바이러스 증상일까. 미안하게도 늘 나와 붙어있는 발터가 내 바이러스를 받았고 내가 겪은 증상을 딱 3일 늦게 순서대로 겪고 있다.


늘 감기가 유행한다 그러면 놓치지 않고 걸리는 나는 이번에도 놀랍지도 않다. 단, 올해는 11월 말부터 시작했으니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듯하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온라인 미팅이 취소되었다. 미팅의 상대는 독일 관공서 공무원이었는데 아파서 미팅을 2주 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아침부터 연락이 왔다. 나도 아프지만 '온라인이니까 두 시간 미팅하고 말지 뭐, '라고 생각했고 독일 공무원은 칼같이 병가를 내면서 2주 정도 후 업무 복귀를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온라인 미팅은 취소되었지만 급하게 주고받을 것이 있어 짧게 전화통화를 했는데 목소리 상태만 들어보면 심해도 내가 한창 심한데 말이지.


내일 점심쯤 물리치료 예약이 있어서 회사를 조퇴한다는 친구와 물리치료 후 남는 시간에 볼까 했었다. 물론 내가 아프기 전 지난주에 했던 얘기라 내 상태가 영 나아지지 않으면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친구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물리치료사가 아파서 내일 예약은 취소되었고 그리하여 정상출근해야 하니 나와 만날 시간은 없을 것 같다고. 이쯤 되면 본격적으로 다양한 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했다는 뜻 같다. 줄줄이 병가를 내고 줄줄이 약속이 취소되는 시간.


닭다리에 마늘과 파를 가득 넣고 끓인다. 삼계탕이라고 백숙이라고도 부르기 애매한 이 요리는 내가 독일에서 아플 때마다 끓인다. 대충 소금간만 잘해도 맛이 어느 정도 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프고 힘들 때에면 더욱더 본능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평소에는 안 먹던 한국음식을 굳이 굳이 만들어 먹는 것을 보면. 단, 독일에도 닭을 끓여 먹는 '치킨 수프'라 부르는 음식이 있고 수프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아플 땐 이것을 먹는다고 한다. 삼계탕이나 백숙을 즐겨 먹는 한국과 달리 치킨수프는 아플 때 먹는 음식이라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전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들은 아플 때에는 먹는 것을 최소화했었다. 의외로 많은 독일 사람들이 아플 때 적게 먹는 것을 선호한다. 입맛이 없을 때 굳이 챙겨 먹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아무리 먹는 것에 흥미가 덜한 독일사람이라지만 이 부분에서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되도록 침대에 누워있고 생강차와 감기차를 한없이 마시는 것을 권했다. 아플 때에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그래도 쇠약한 에너지가 소화를 돕기 위해 모두 쓰이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이기는데 좋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전 남자친구의 가족 모두 약보다는 민간요법, 자연치료법을 추구하는 분위기였고 종종 효과가 있었어서 많이 배운 점도 있었지만 감기나 몸살로 몸져누웠을 때 먹지 않는 것은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열이 나고 콧물을 줄줄 흘리며 입맛이 하나도 없지만 꿋꿋이 닭과 파, 마늘을 끓였다.


연말 모임이 많은 12월의 약속은 단체 모임이라면 누구 하나 빠지는 게 당연하고, 그 어떤 중요한 약속이라도 누군가 아파서 취소되는 허무함이 종종 있을 것이다. 친구 지인들 모두 아프더라도 짧게 아프고 지나가기를 바라며 옆집 할머니 아랫집 할아버지 별일 없기를 바라는 것 보니 괜히 아프니 쓸데없는 오지랖도 넓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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