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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슬 Nov 21. 2023

영어가 싫어하는 두 가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Gravity(중력)는 작품 뿐만 아니라 제목까지 위대하다.

우선 '토양, 흙'에 대한 존재감인데,

영어로 '흙'이기도 하고 '지구'이기도 한 earth 새삼스럽게 느게 해주는 장면이 그것이다.

지구로 귀환한 박사(산드라 블록)가 흙을 만지고 나서야 지구임 확인하며 안도한다. 박사는 흙을 손으로 여러 번 움켜쥐었다 놓으면서 혼잣말을 한다.

"Thank you."


'중력'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이 영화만 한 도구가 있을까.

고요한 우주를 유영하던 박사가 땅을 딛고 일어날 때는 첫 돌을 앞둔 아가와 같다.

두 다리로 일어서려면 중력과 동일한 힘이 필요해서일. 먼저 네 발로 흙바닥을 밀어내고 다리에 힘을 주어야 첫걸음을 뗄 수 있다. 박사가 두 다리로 일어설 때까지 손이라도 잡아주듯 카메라 앵글은 가장 아래에서 묵묵히 응원한다.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영화 '그래비티'.

공기, 중력, 마찰, 저항, 그리고 내가 받고 있는 사랑.


수업 시간에 중력을 이기고 앉아있는 것이 가장 힘든 아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다.

그제야, 영어가 싫은 이유가 문법 때문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 아이가 문법 공부를 안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 수능 영어에 문법은 딱 한 문제다.

둘째, 우주처럼 무한한 문법규칙을 외우고 나서 또 불규칙을 외워야 한다.

매우 명료해서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까지 칠 뻔했다.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위로하고, 설득할 의무가 있으니 난 다시 내 자리를 찾아야 다.

진정한 위로는 함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이므로, 이 학생이 포기한 문법 공부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혹시 영어가 싫어하는 두 가지가 뭔지 아니?"

"몰라요, 귀찮아요."

"영어는 뻔한 것반복을 싫어해. 너도 이 두 가지 싫어하잖아, 그렇지?"


영어가 반복과 뻔한 것을 싫어한다는 가정인정해야만 비로소 분사구문과 관계대명사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문법과 구조를 아는 것은 지름길을 찾는 일이야."

세상 지겨워보이는 문법공부의 절정은 긴 문장의 뼈와 살을 발라 주는 을 선물로 주 것이다.

고루한 문법 공부 끝에 이런 환상적인 선물이 기다린다는 것을 멋진 예고편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인 전주 연화정 도서관 옆에는 놀이터가 있다.

이름도 거창한 '야호 맘껏 숲놀이터'이다. 영어로 'Yaho Mamkkeot'이라고 번역한 누군가의 기지가 돋보인다.

영어는 이런 것이다. 문법을 알아야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당당함이 생긴다.


지금 아이들이 불필요한 노동처럼 여기는 문법 공부를 좀 더 값진 노력으로 남기기 위해서 나는 어떤 도구를 준비해야 할까.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노동이라면, 노력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영리하게 기울이는 것이다.

수많은 비유와 직유를 내포한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좋겠으나, 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될 수 없다.

그저 수업 시간에 뻔한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부터 보여주는 멋진 라이브 강의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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