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는 서울도 있고 뉴욕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 광주도 있고, 서울 논현동과 인천 논현동도 있다.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인천에도 있는데, 약간의 차이라면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나무가 무성하지만, 인천은 아직 그늘이 짧고 좁다. 뉴욕의 중앙공원이 머리숱 풍성한 청년의 모발이라면, 인천의 중앙공원은 베넷 머리로 뒤덮인 아기의 두피 같다.
서울에서 인천 송도로 이사 왔을 때 내가 살던 곳과 닮았기 때문에 좋았다. 넓은 도로에 들러붙어 다니는 수퍼카들과 석촌호수 같은 센트럴 파크는 반가웠다. 삼성동 무역센터 같은 빌딩도 있고,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하여 테헤란로 같기도 했다. 11평 신혼집에서 인천 송도라면 서울에서 굳이 안 살아도 된다는 말을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뱉은 한마디가 우리 부부의 영혼까지 끌어오게 되었고, 원리금균등상환이라는 월간목표는 맞벌이 신혼부부의 일상에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아파트 계약 전날 밤, 세 평 거실에 젓가락처럼 누운 나와 남편은 철없이 설레기만 했다. 아무리 맞벌이라지만 퇴사 전까지 갚을 수는 있겠냐며 미간을 찡그렸다가, 이제 아기와 외출해도 고철 떨어지는 소리에 애가 놀라지 않는 거냐며 좋다고 웃었다. 그저 집안에는 곰팡이 안 생기고, 집 밖에는 지하철 레일 긁는 소리만 나지 않아도 좋겠다며 둘이 손을 잡았다. 아파트 계약당일, 친절한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는 입주할 아파트의 장점들을 정리해 주면서 확신을 주는가 싶더니, 한마디를 더하셨다. 여기 사람들이 센트럴 파크 근처는 송남이고 우리 아파트 구역을 송북으로 부르는 것만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는 조언이었다. 송남 송북이라면 설마 강남과 강북의 짝퉁인가 싶어 센트럴 파크를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이런 말은 20년 전에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들어보고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신선했다. 아직 고3 때 찐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화장하는 법도 몰라 신경이 날카로웠던 때였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학번/이름/사는 곳으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시켰고, 내 차례가 되어 소개를 마치자마자 들려온 말은 ‘올~강남~’뿐이었다. 다른 예쁜 동기들에게 하던 추가 질문은 없이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하필 나만 동네 이름만 불러주고 끝나는 건지 서운했다. 아직 촌스러운 때를 벗지 못한 내가 강남에 사냐고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눈빛들이 애매했다. 하필 가장 예민했던 그 시절 나에게 신입생 환영회는 짜증 그 잡채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다시 송남 송북을 듣게 되니,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강 북쪽이 강북이고, 한강 남쪽이 강남이라는 본래 의미만 생각하면 이곳 센트럴파크는 한강의 절반도 안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리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는 ‘강남 사람’을 갈망하고 있고, 그 간절함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송북인 것 같았다.
10년째 신도시에 살아보니, 서울을 닮아서 선택한 이곳이 밋밋해 보이기 시작하더니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비슷해 보이기 시작해 지루해진 시기가 있었다. 겨울이 되면 M사 점퍼들을 대부분 입고 있다가, 여름이 되면 H 모자를 다 함께 쓰고 다니는 걸 보니 이 도시가 좁은 건지 유행에 충실한 사람들이 유독 모여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H 모자는 1992년 호주 한 달 살기 할 때 생존 모자로 사서 너무 질겨 엄마가 지금까지도 쓰시는 모자일 뿐이다. 지금 2023년 이곳 사람들이 다 같이 쓰고 다니는 것 있는 것이 ‘밈’인가 싶었다.
강남에 살 때는 ‘강남스타일’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동네에서 오렌지족들을 보며 그들의 통 넓은 청바지는 어디 가서 사느냐며 수군대긴 했었다. 인터넷 쇼핑이 없던 시절이라 같은 동네 같은 백화점에서 비슷한 옷들만 보다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한 사람을 보니 구경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 신도시에서도 거의 모든 게 비슷한 주거환경과 생활 수준 속에서 일상이 지겹고 공허한 것일까. 나와 너를 구분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가는 30년 전 오렌지족의 우월감이 지금 이곳에 유행 중인가.
송도 신도시에 S카페만 수천 개가 있다고 상상해 보면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다양한 분위기와 커피 맛, 빵 냄새가 가득한 여러 카페들이 공존하는 도시가 풍성하고 매력 있다. 뉴욕에는 Cafe Lalo가 있기에 그곳 시민들은 우월감을 가져도 된다. 복잡한 뉴욕에서 시민들이 아껴주느라 숨겨놓은 것 같은 Cafe Lalo는 그곳을 찾아가는 순간이 카페의 대문이고, 찾아가는 길들이 모두 그 시민들의 자부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대기업의 커피만 최고라고 외치고, 다른 소규모 카페들의 커피맛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한다면, 송도는 S카페만 수천 개 들어서는 무서운 곳이 될 것이다. 송도에는 30-40대가 많은 편인데, 내가 속한 이 세대는 줄 세우기를 많이 당한 세대이다. 그러니 가르기를 잘해야 내가 돋보이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가여운 세대이다. 연령대가 엇비슷한 세대들이 모여사니 친구를 만들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뉴욕에서 Cafe Lalo를 찾아냈듯이 보석 같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우월함을 드러내야 행복한 사람들로부터 자가격리 하면서 책과 문구를 사랑하는 이 언니,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뒷모습까지 당당한 저 언니, SNS를 위한 여행이 아닌 진짜 여행으로 시간을 채울 줄 아는 내 친구, 이곳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송북이 정말 고맙다. 하마터면 소리 지르며 질러버린 신도시를 비명 지르며 떠날 뻔했는데, 남편 따라다니며 발견한 동인천의 노포 사장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송남 송북을 능가할 신조어를 만드느라 애쓰는 분에게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이 사는 인천은 바다, 섬, 도시를 품은 거대한 여행지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그리고 인천을 최대한 많이 걸어보시라고 말이다. 한자로 인천(仁川)은 어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이고, 영어로 인천은 “All ways Incheon”이다. 아줌마 감성으로 해석해 보면, 다양한 방식과 태도가 존중받고, 모든 길이 서로를 향해 통하는 도시, 인천이라고 해석이 된다. 이 의미처럼 나의 두 번째 고향 인천에서만큼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인 ‘나누기’ 대신에 사랑스러운 인천에 어울리는 ‘나눔’이 보편적 정서가 되도록 작은 발걸음을 조심스레 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