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희주 Jul 04. 2024

상담대학원생의 일상 일기

#3. 네가 감정이 메말라서 그래

 [내가! 내가 한정 서라고요!!]


 주일 아침. 

 나는 교회를 가기 위해 거울을 보며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또 귀걸이를 고르며 예쁘게 치장하느라 분주했다. 분주함 가운데 내방 바로 앞 거실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내 귀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이 여자의 목소리는 배우 최지우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아침부터 드라마를 시청하고 계셨다.

 2003년 작품 "천국의 계단"을 보고 계셨다. 


'무려 21년 전 드라마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어릴 적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봤던 기억이 떠오르며 옛 추억에 젖어 엄마 옆에 앉아 같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오빠 가자! 우리 어디로 갈까? 일출 보러 갈까?]


“네가 타야 가지~ 벌써 해 다 떴는데 무슨 일출을 보러 가~”

“ㅋㅋㅋ 엄마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무슨 그런 말을 해 너무 웃겨”


 최지우 씨가 신현준 씨의 봉고차 앞에 차를 세우고 신현준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정확한 드라마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내가 목격한 장면은 최지우가 신현준을 설득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차에 타는 것이 아니고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TV속 최지우 씨에게 한마디 하셨다.

 

 드라마 보면서 그러려니~ 하면서 보면 될 텐데 우리 엄마는 너무 극 현실주의다…(드라마는 왜 시청하시는 걸까?) 그렇게 나는 드라마가 궁금해서 같이 보다가 또 나갈 준비를 하다 가를 반복했다.


[정서 저와 함께 있습니다.]


 신현준 씨가 권상우 씨한테 최지우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상황이었고 그때 권상우 씨는 김태희 씨랑 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업아이템 결과물을 같이 확인하고 있는 김태희 씨와 일터를 팽기치고 뛰쳐나와 최지우에게로 달려가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저런 모습이 진짜 사랑인 것 같고 멋있어 보이고 낭만 있어 보이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 보이네~ 자기 직장일 내팽겨 치고 달려가는 모습이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

“네가 감정이 메말라서 그래~”

“무슨 감정이 메말라~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 거지!!!”



 나이를 먹는 것일까? 철이 드는 것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어떤 생각이 고착화된 것일까? 순수함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정말 엄마의 말처럼 감정이 메말라진 것일까? 드라마는 변한 것이 없다.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대사였다.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10대의 내가 느낀 것과 30대의 내가 느낀 감정들이,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뒤늦게 철이 들었을 수도...)


 나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따라 판단하게 되고 깊게 고민하지 않은 채 직감과 본능을 믿고 그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혹은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후회를 하기도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감정에 지배되어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내가 살아온 10대와 20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경우가 더 많았다. 드라마 전체를 관찰하기 보기보단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내가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것처럼 드라마를 시청했었다. 

 

 물론 내가 나이를 먹어서 철이 들어서 보는 것이, 느끼는 것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각의 전환, 가치관의 변화 마음과 행동의 변화는 쉽지 않다.

 이러한 작은 일상생활을 통해 나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별거 아닌 드라마를 통하여 내가 보는 시각도 생각도 많이 확장되고 깊이도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전 02화 상담대학원생의 일상 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