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희주 Aug 15. 2024

상담 대학원생의 일상 일기

#9. 왜요? 그냥 그리면 되잖아요.


 이직을 한지 어느덧 2달이 지나간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첫 달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일에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 특히 일요일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 저 종이 주세요~”

“저도 주세여.”


어느 일요일 오후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들 둘이서 나에게 찾아와 그림그릴 수 있는 종이를 달라며 고사리 같은 조그마한 두 손을 내 앞에 쭉 내밀었다.


“그림 그릴 거예요?”

“네!”

“몇 장 필요해요?”

“2장 주세요. (친구를 가리키며) 시아도 같이 그릴 거예요”

“자, 여기요”


나는 아이들에게 종이 두 장을 고사리 같은 두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갔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어질러진 책을 책장에 하나씩 정리하면서 그림 그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우와, 그림 잘 그린다~ 누구 그린 거야?”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칭찬부터 해주게 되었다.



“이거는 아빠고, 이거는 엄마고, 이거는 나예요”

“우와~ 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네~ 시아는 누구 그린 거야?”

“…”


두 여자 아이 중 한 명은 가족을 그렸고 시아는 사람 한 명을 그렸는데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어리둥절하며) 시아 그린 거야? 엄마 그린 거야?”

“...선생님 그린 거예요.”

“우와~ 진짜 선생님 그린 거예요? 선생님 감동이다. 정말 잘 그렸다!”

나를 그려준 시아

시아는 다름 아닌 나를 그려준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이고 나와 친분이 없기에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나를 그려준 것에 대해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 친구들은 그림 정말 잘 그린다~ 선생님은 그림 못 그리는데~”
“왜요? 그냥 그리면 되잖아요”

“어~?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그림 잘 그리는 달란트를 안 주셔 가지고~ 그래서 잘 못그려요~”

“왜요?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시아도 그냥 그리는 건데~”


아이들의 ‘왜요’ 질문 공세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 아이들의 질문과 말들을 통해 나는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안 했던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잘 그리면 좋은거고 또 못 그리면 어떤한가? 내가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되는 것을 이것이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일까? 아이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어른은 주변을 너무 의식하는 것들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주변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기성이 아이들 답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 때문에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반대로 주변을 너무 의식해서 배려하지만 정작 내 것을 챙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도전하지 못하고 금방 포기하는 어른들의 모습들. 어떤 것이든 양면성은 있었다.

나의 첫 그림 도전 (수박)

또 못 그리면 잘 그리게 될 때까지 노력하면 되는데 왜 나는 첫술에 배부르려 했을까?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과 어차피 못하니까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가 빠른 어른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부끄러웠다.

30년 이상 차이나는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였지만 그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주변을 챙기고 배려하며 무슨 일이든지 도전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전 08화 상담 대학원생의 일상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