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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주 May 20. 2023

질병, 난임 그리고 조기 폐경

2.끝나지 않은 나의 병


 병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침대에 누웠다. 이상하게도 병원 냄새가 좋았다. 벌써 치료되는 느낌이 들어 좋게 느껴진 걸까? 병원향에 취해 있는 것도 잠시 간호사 선생님께서 바리깡? 을 들고 나에게 오셨다. 느낌이 불길 했다. 수술 들어가기 전 중요부위의 털을 정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첫 왁싱 경험을 이렇게 병원에서 하게 될 줄이야… 너무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다음날 딱딱하고 차가운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의료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수술방의 천장 전등이 날 반겼다. 눈이 너무 부셔 잘 뜨지 못했다. 수술복 입으신 선생님께서 나의 코에 호흡기를 채워 주셨고 링거에는 주사로 마취제를 놓고 계셨다.


“환자분! 숫자 10부터 거꾸로 말해볼게요~!”

"10,9,8..."





 

 "환자분! 일어나실게요!! 눈떠보세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지 못한 나를 간호사님이 격하게 흔들어 깨워 주셨다. 처음 겪는 전신마취에 비몽사몽 했다. 나의 내막조직은 양쪽 난소 이외에 다른 장기들까지 들러붙어 제거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병실로 돌아온 나는 아랫쪽의 불편함을 느껴 병원복 상의를 들췄다. 배꼽을 중심으로 양쪽 배엔 실이 꿰매 있었고 아래쪽엔 소변줄이 꽂혀있었다. ‘아… 나 정말 수술했구나…’ 배 상태를 보니 실감이 났다. 

 

 일주일 가량 입원을 했고 입원 내내 엄마가 휴가에 연차까지 쓰시며 함께 있어 주셨다. 퇴원 후 엄마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왔다. 아빠와 둘이서 같이 살고 있었지만 중장비 일로 인해 거의 혼자 지냈었다. 


 혼자 밥먹기 싫어 끼니를 거르거나 햇반으로 대충 먹었다. 어떤 날은 편의점 삼각김밥 또는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새벽 늦게까지 10시간 이상 일을 했고 고된 노동으로 집에서 밥할 기력이 없었다.

  퇴근후 직원과 근처 식당에서 반주를 했다. 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이런 근무 형태와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의 결과를 듣기 위해 서울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엄마와 동생은 일과 학교로 인해 시간이 맞지 않았다. 엄마가 '연차라도 뺄 걸 그랬네’라고 말했다. 내가 ‘괜찮아~ 혼자 서울 잘 갈 수 있어~’라고 씩씩하게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에선 서운함이 조금 생겼다.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방문한 병원. 의사 선생님은 내 병과 수술한 내용에 대해 사진을 보여주시며 설명해 주셨다. 자궁내막증 혹은 암은 아니지만 암처럼 1기부터 4기까지 있는데 나는 양쪽 모두 가장 심한 4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혹과 주변 장기들에 붙어있던 조직들을 제거하는 시술을 했다며 말씀하셨고, 그다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1년 안에 결혼해서 아이부터 가지셔야 합니다.”

“네?? 1년 안에 못 가지면 어떻게 되나요?”

“1년 후엔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합니다. 아이 못 가질 수도 있어요. 

  자궁내막증은 재발 확률이 30프로가 돼요. 완치가 없습니다.”

“하…”


 나는 의사 선생님께 차마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할 수 없었고 조용히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하실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는 수술 전에 설명해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야속했다. 환자한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데 너무 쉽게 툭툭 내뱉는 그 말들이 나의 가슴에 푹푹 박혔다. 



 엄마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챙겨 맨 뒤자석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버스엔 사람이 몇 없었다. 버스가 출발했고 무표정의 초점 없는 눈으로 창가를 바라봤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떨어졌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겨내려 열심히 돈을 벌었고 내 앞가림 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행복이 아닌 불행이였다. 혼자서 감당하기 너무나 서러웠다. 괜스레 같이 오지 못한 엄마가 미웠다.


 수술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던 나의 희망과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1년 안에 결혼해서 아이를 갖으라는 것 자체가 너무 허무맹랑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이병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게 되는 또 다른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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