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때

훌륭한 전임자와 헤어져 독립 업무가 시작된다

by 쉬는건 죽어서

나이와 상관없이 스승이 되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10살도 더 어릴텐데도, 철 드는 건 나이와 상관이 없구나 라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처음 말 한마디를 나눌 때 부터, 이 사람은 "찐"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소탈함과 시원시원함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 그리고 짧은 한 달 동안 그런 후배를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안식년을 맞은 것 같은 한 달이었다. 대나무가 마디가 생기기 위해 성장을 잠시 늦추고 마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곧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 처럼 또 다른 10년 위한 마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듯이 그 곳곳에 성장을 도와주는 "곧은 밝음"의 그 후배가 있었다. 후배지만 또 다른 방향의 이정표를 만난 듯한 모든 면에서 간지나는 사람이었다.


조각상을 만들면서 한 사람은 돌을 깎고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일에 대한 의미와 시각이 생각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나던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는 회사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임하는 것은 주변에서 그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다른 어떤 일보다 그 "의미있는" 일을 먼저 해주게 되는 당연한 결과로 이어진다. 당연히 결과물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이 부서로 이동을 결정한 나는 "의미있는" 과정에 동참하게 된 것이라 선택을 아주 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OJT 과정에 어떤 분께 설명을 들으며 매사 부정적인 그 분께 팩트폭격을 당했다. "이제 와서 실무를 하겠다고? 왜 그런거지? 관리만 하다가,, 난 적응이 힘들다고 본다." 부정적인 분이라는 사전 지식이 있었음에도 멘탈이 쉽게 흔들리는 나는 며칠을 분해했다. 또 다시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창의적 좌절의 루프에 빠진 나에게 그 후배는 쿨하게 한마디 건져준다. "그 분은 못하실꺼 같아요. 우리 일은 체계적인 일이니까요. 프로님은 당연히 하죠." 다른 어떤 이들에게 들었던 위로의 말보다 나를 크게 위로해 준 그 한마디. 일각의 고민도 없는 즉각 반응이라 더욱 진실처럼 느껴졌다. 20년을 다녀도 철없이 이건 저렇다 저건 이렇다 라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에게 확실한 명분과 기준을 제시해주는 생각이 단단한 친구였다.


그 친구의 대학때 다녀온 아프리카에서의 삶과 UN과 KOICA라는 나의 삶에서는 꿈꿀 수 없는 삶의 궤적이 오픈 마인드의 태도와 남다른 영어 실력을 갖추게 해 주었던 것이겠지. 혹은 선후 관계가 바뀌었을수도. 그저 의사 전달을 위한 영어도 허덕이는 나에게 교양있는 후배의 영어는 단순한 영어 실력의 부러움을 넘어서서 생각의 깊이의 차이까지 느끼게 해주는 지점이었다.



새로운 삶의 롤모델 같은 간지나는 후배를 오늘 보냈다. 가대차에 짐을 실어서 가는 부서까지 데려다 주려 했지만, 환영나온 친구들에게 중간에서 넘겨 보내며 20년 시절에 익숙해진 회사에서의 이별이, 찐 사람에게는 아직 아파할 마음이 남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떠나 보냈다. 그리고 돌아와 앉은 사무실은 생기와 밝음이 사라져버린 삭막한 예년의 그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법에서 깬 듯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젠가의 억울함이 지금의 운좋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