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미정은 동호회나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부서 친구들과는 적당하게 섞여서 잘 지낸다. 친한 친구 한수진은 계속 염미정의 동호회 활동을 권해주고, 다른 일상 생활에서도 계속 잘 챙겨준다. 하지만 염미정의 소극성 때문일지 수진이의 스치는 얌체같은 표정 때문일지 왠지 믿을만한 친구 같은 느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계약직 친구에게 듣게 된 염미정만 빼고 가는 괌 여행 소식. 그 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모습을 옆 눈으로 슬쩍 보면서 무심을 가장하면서도 상처받는 표정에서 염미정의 섬세한 기분이 느껴져서 소름끼쳤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나는 계약직이니까, 나는 어디서든 즐거운게 크게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나의 약점들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이런 상황을 반강제적으로 납득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배신감과 부러움과 섭섭함은 사람인터라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모든 감정의 결들이 파도처럼 느껴져 왔다. 차라리 왜 그랬던 거냐고, 왜 나만 빼놓고 가냐고, 내가 계약직이라 뺀 거냐고 물어보면 속 시원하기라도 할텐데, 그러다가 인정하는 침묵의 시선 회피라도 만나게 될까봐 물어보지 못하고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결론 낼 수 있으면 싸움닭으로는 불리더라도 스스로에게 상채기를 내지 않게 될텐데, 염미정은,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속으로 삭히며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오래 가면 무기력함에 빠지게 되고, 의도하지 않은 주변 상황도 왜곡되게 해석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노력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게 없다는 무기력과 패배감의 늪에 빠지게 된다. 모든 관계에 지쳐버리서 축 늘어진채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친구들의 동기부여가 제일 어렵다. 무엇을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해방',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어야 한다. 꽉 눌려있는 상태에서 압력과 열기가 가득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스가 구멍이 하나라도 생겨서 김이 빠지는 순간 압력과 열기가 빠져 나간다. 그렇게 탈출구가 있어야 하고, 하나라도 표현을 하고, 하나라도 작은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바꾸다 보면 나의 이미지와 나의 이름표가 바뀌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성과가 정체된 한국의 기업들에 관한 이야기. 처음 드라마를 보았을 때는 배경이 공무원 조직인줄 알았다. 공기업을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을 하느라 늦는 것이 아니라, 끝나고 동호회와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늦는다고 했다. 부서장과 부서가 금방 바뀌는 일반 기업과는 다르게 한번 배치되면 퇴직까지 계속 함께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에서는 동호회 활동이 많다고 했다. 일반 기업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push 받고 해내는게 어렵지만, 공기업은 왜 '내가' 해야되는지가 고민이라고 (물론 이것은 아주 작은 경험만으로 이야기 하는 한정적인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하던 때는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의 이야기. 두자리수 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이야기. 차장급만 되어도 밑에 사원을 수십명 이끌고, 해외 공장 투자 기획을 하던 시절 이야기. 하지만 이제는 과거 차장이 하던 일을 임원, 사장단이 되어야 추진할 수 있고, 현업 부서장들의 권한은 위로위로 올라가고 자유도가 줄어들었다. 조직의 변화도 많이 줄어들었다. 정년도 늘고, 역피라미드가 되어버렸다. 한 부서에서 몇 년씩 있는 있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어 버리다 보니 성과를 내기 위해 다그치는 것도 한 두해 반짝일 뿐이다. 열심히 하자, 성과 내자 동기부여 하다가 평가를 좋게 받지 못하는 한 두해가 지나고 나면 해도 안되지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러다보면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 하루하루 넘기자는 태도로 바뀌면서 자조적인 즐거움만을 쫓는 분위기로 시나브로 바뀌어 버린다.
그러다보면 이 무리에 못 끼면 이 부서에 못 있게 되는 것임을 알고 사람들은 동호회 활동이나 목소리 큰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어 하루하루 위안을 얻으려 한다.
이렇게 활력과 동력이 사라져버린 기업에서 할 수 있는 건 조직문화 활성화 방안 정도 추진하는 것. Saturation 된 시장을 바꿀 수도 없고, 부서장을 매년 바꿀 수도 없고, 조직개편을 영향력있게 매년 할 수도 없고, 부진인력을 매년 쳐낼 수도 없으니.
이런 정체된 조직에서 느끼는 30대의 숨막힘을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도 표현해 내는 명작 "나의 해방일지" 어떻게 해방에 이를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회사는 어떻게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