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저자 박혜윤 (지은이)
출판 다산초당(다산북스)
발행일 2022-09-26
카테고리 국내도서> 인문학> 인문 에세이
함께 읽은 북클럽 : 디깅클럽 (7월)
에고티즘 :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나를 알아가고, ‘나’ 답게 사는 것의 의미를 찾기 위한 작가의 실험들, ‘의미’가 있는 삶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 그 경험과 사색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이어야 할지 생각해 보지만 작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이렇게도 살아보는 것이라고, 실험 중이라고, 완벽하지 않지만 방향을 정하고 기준을 정해 가는 작가의 삶이 부럽기도 합니다. 어쩌면 작가의 생각의 깊이가 부러운 것일지도요.
‘자유’에 대한 고찰,
‘의미’와 ‘자유’에 대한 생각,
‘완벽’은 찰나의 순간에서 존재,
‘성장’은 미래 시점,
지금 찰나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즐기기, 비록 하찮은 일이라도,
예를 들어 ‘집안일’.
무엇이 되려고도 하지 않지만, 무엇이 되어도 괜찮은.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읽으며 작가에게서 배운 것들입니다. 작가의 전작 <숲 속의 자본주의자> 보다는 조금 더 소로의 <월든>에 대한 해석이 많이 나와요. 아직 <월든>을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책에 대한 호기심과 소로에 대한 호의를 높여주는 책이었어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었고, 어떤 회원분들은 작가의 다른 책도 함께 읽었다 하셨습니다.
위대한 시나 철학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위대한 루틴도
'내'가 직접 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저자가 되어야 한다.'
각자 다른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들을 하나의 철학이나 방식 안에 인위적으로 공동체로서 묶어놓은 것이 진짜 문제 아닐까. 소로는 우리가 소중한 것이라며 다 함께 받들고 이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선행이나 공동체, 혹은 부유함 같은 것들 때문에 우주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다 다르게 살아가는 견고 함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그런 견고함 말이다. <도시인의 월든>
울퉁불퉁한 사람들이 맞물려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이 세상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같지 않으며, 같을 필요도 없어요. 하나의 철학 안에 개인을 묶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보면 자본주의가 마치 교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말해요. 생활 방식, 아이들 교육, 진로와 직업 등, 모든 것의 기저에 자본주의의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넘어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런 자본가들이 되어가는 우리의 현실을 잠깐 멈추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집안일은 내가 선택했던 방법 중 하나였다. 모든 사람이 집안일을 나처럼 해야 한다 말하는 게 아니다. 나의 욕망이 향하는 사회적 성공을 위한 일이나 중요한 일들을 할 때에도 그 결과에 완벽하게 무심하면서도 집중할 수 있는 태도를 매일 실천할 수 있도록 연마하는 수단으로 택한 것이다. 그런 태도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수단은 무엇이든 좋다. '어차피 안될 거야. 그러니까 대강할 거야, 그런데 계속할 거야.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 위해서는 몰입하고 집중해야 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이런 삶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만들게 됐다. <도시인의 월든>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요. 매우 단출한 가정 살림과 방식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서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을 추구하는 작가의 태도가 보입니다. 마치 소로처럼요. 그러한 것을 가치 있게 하는 습관을 들이길 원해요. 집안일을 하면서 그 태도를 연습합니다. 꾸준히, 무심하게, 하지만 몰입하여 집중하는 태도를 연습하는 수단으로 집안일을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청춘은 그야말로 가열찼습니다. 서울에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고, 미국에서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이었어요. 그러한 작가가 삶의 태도를 바꾸고 방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미국의 숲 속으로 갑니다. 그렇다고 소로의 숲처럼 많이 외딴곳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주위와 자발적 단절을 위해 아주 넓은 땅을 사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꿈꿉니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고 조절해 가면서 생활하는 이야기가 전작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 서술되어 있어요. <도시인의 뭘든>은 그보다는 소로의 <월든>을 작가의 실험과 생각으로 다시 풀어낸 느낌입니다.
"이렇게 살아봤는데, 괜찮아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40대가 되면서 다시 이 책 <월든>을 열렬히 좋아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뭐가 되지 않고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이유에 끌렸다. 20대만 해도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 실제로 그렇게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소로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40대가 되면서 '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치명적인 나의 약점을 끌어안기 위해 <월든>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도시인의 월든>
'뭐가 되지 않고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삶의 태도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한 태도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읽은 많은 회원분들도 같은 말씀을 주셨어요. 처음 읽을 때는 '나는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라고 하신 분들이 많았지만, 책을 거의 읽었을 때는 모두의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생각합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 이웃을 포함한 타인을 대하는 태도, 나를 끌어안는 삶의 태도까지 우리가 바라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켜 준 책이었습니다.
<월든>의 언저리에 있는 책들만 몇 권을 읽은 것 같아요. 이젠 <월든>을 제대로 읽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책도 진작 사놓았지만, 그대로 쌓여 있어요. 존재만으로도 '나의 태도'를 상기시키는 상태로 있습니다. 오늘도 회원분들의 후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부족하지만 아름답게'가 아닌 '부족하고 아름답게'라는 책의 문구가 제대로 와닿는 책이었다.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나의 삶의 지향점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부럽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런 삶을 살기까지 가족 간에 얼마나 많은 대화가 있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예전에 드라마가 생각난다. 내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가, 내 멋대로 살고 싶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타인의 과시적인 삶을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부러움과 바람, 질투, 그리고 본받고 싶은 마음 등 다양할 것이다. 나의 삶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그 내면에 '삶의 태도'가 굳건히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태연한 마음에 이를 수 있는 가열찬 생각의 투쟁과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삶의 태도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유능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그 상태로 그대로 살아남을 공간이 있다....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해 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지금의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것이다.' 책을 이제 읽기 시작했지만 이 부분에 공감이 간다. 영화 '미나리'에서 아빠가 가까스로 판로를 뚫어 팔기로 한 농산물 창고가 다 불태워졌을 때,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들에게 희망이 된 것은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와 숲 속 개울가에 씨를 뿌린 미나리였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뭘 먹고살지 막막했을 때 그래도 자연은 그런 상황의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나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준다. 자연은 감히 사회에서 쓸모없어질 용기를 준다. 작가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연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모성이고 거기서 작가는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자연, 우주의 한 일부분으로서 나라는 존재 자체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부족하고 아름다운 태도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았을 때 조금 부족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음미하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일희일비하고, 앞선 걱정과 지난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삶을 '하찮게' 살아봐야겠다. 부모의 자세도 더 담대하게! 그리하여 아이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싶다. 내가 꿈꾸는 부모상을 사는 실제 살아낸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더라. 팔랑팔랑 이제 그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