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맨의 덩치에 압도당한 그날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경찰을 만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 경찰이 날 찾아왔다.
단풍국처럼 큰 나라에서 '차와 운전'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만 16세부터 운전을 할 수 있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에브리바디 운전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집 앞에 지하철과 버스가 다니고, 몇 발자국 안 가서 편의점과 슈퍼마켓이 있는 도시에서 몇십 년을 산 서울 여자는 '운전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유야 대려면 얼마든 지 있었다. '골목운전'이 무서웠고, '주차난'을 겪고 싶지 않았고, 차가 '밀리는' 게 화가 났다.
그랬던 내가 지갑에서 케케묵고 있던 운전면허증으로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고, 안전을 위해 장롱면허 연수까지 받고 왔다. 이 나라에서 살아보려면 싫다 해도 도리가 없었다.
오기 전에 운전을 좀 하고 왔다고 한 들 결혼 후 13년 동안 운전한 거리가 1만 킬로도 안 되는, '생' 초보운전자였다. 그래도 모두들 캐나다에서는 골목운전을 할 일이 거의 없고, 주차난은 없을 것이며, 차가 밀리는 일도 없기 때문에 한국보다 훨씬 운전하기 쉬울 거라고 안심시켰다. 난 그 말만 믿었지 뭐야.
그날은 아이가 학교에 등교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캐나다의 학기 시작은 9월로, 9월 1일은 노동절 공휴일이라 2일이나 3일에 개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며칠간 *같사남(같이 사는 남자의 줄임말)이 캐나다에 함께 있었지만 어차피 그 사람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고, 내가 매일 아이의 'Drop off와 Pick up'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운전을 많이 해보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게다가 아이가 다닐 학교는 런던시티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30km가 떨어진 더 작은 도시에 있어서 매일 1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게 된 것이다.
아침에 내가 운전석에 앉았고, 아직 한국으로 가지 않은 같사남이 옆에 타고, 뒤에 아이가 타고 학교에 갔다. 긴장은 했지만 다행히 학교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학교까지의 길을 몇 번이나 수없이 왔다 갔다 했던가. 한 8킬로 정도가 남았을 무렵이었다. 계속해서 직진해서 가다가 우회전해서 가는 구간이 있다. 왼쪽에서 오는 직진차량이랑 충분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회전을 했는데 그 직진차량이 뒤에서 빵빵! 거렸다. 아직도 기억난다. '흰색 소*타'.
그 차가 빵빵거리자 같사남이 "그냥 보내고 가지 그랬어." 하길래 좀 머쓱했다. 내가 좀 급했나?
그 뒤 도로의 속도는 Maximum 50Km-70km-90km로 바뀐다. 앞에 차는 없었지만 나는 이 속도에 아주 딱 맞춰서 가고 있는데 뒤에 그 차가 너무 바짝 붙어서 오고 있었다.
'아까 우회전 급하게 들어왔다고 나한테 화가 난 거니'
운전하면서도 좀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 학교로 진입하는 구간에서는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속도를 많이 줄이며 들어갔다. 학교에 도착하자 아이는 벌써 친구를 사귀었는지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다가 농구공을 가지고 온 친구를 발견하고 뛰어갔다. 곧이어 가방을 잔디에 던져놓고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넌 이틀 만에 적응 완료구나. 고맙다.'
뿌듯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좀 지켜보다가 차에 올라탔는데 뒤에 시커먼 차가 서더니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내려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어? 경찰, 폴리스맨이다.
"여보, 저 사람 우리한테 오는 거 같지?"
캐나다에서는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신호를 주면 도로 한쪽에 정차한 후에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을 내리고 경찰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우리 차는 이미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고 창문은 열려있었다. 뚜벅뚜벅 걸어오던 검은 제복이 차 옆에 멈춰 섰다.
"Hello"
난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건장한 폴리스맨이 걸어오는 장면이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느리고 생생하게 재생되곤 한다. 영어로 다 옮길 순 없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You were driving Too slow - it was unsafe.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하러 왔어."
말은 알아들었지만 너무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 뭐라고? 순간 흰색 소*타가 생각난다.
'그 사람이 신고했나 봐!!'
"운전면허 좀 보여줄래? 혹시 너 술 마셨어? 드러그(약) 한 건 아니지?"
NO!! 이게 다 무슨 소리람. 손을 덜덜 떨며 가방을 뒤져서 쓸데없이 여권을 막 꺼냈다. 그걸 보던 같사남이 "여권 아니야. 국제운전면허증 보여줘" 한다. 옆을 돌아보니 이 사람도 당황한 것 같다.
"아, Okay, Okay" 국제 면허증을 꺼내서 떨리는 손으로 면허증을 건넸다.
"아이 학교 첫날이야? 너 캐나다 언제 왔어?"
"일주일 전에.."
내 면허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면허증을 다시 돌려주며 폴리스맨이 쾌활하게 말했다.
이게 대체 뭐람. 과속이 아니라 Too Slow라니. 내가 그렇게 느리게 달렸나?
멍하니 경찰차가 빠져나가는 걸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지금 누가 신고해서 경찰이 우리 찾아온 거 맞지?"
"음. 그런 것 같네. 뒤에 바짝 찾아오던 차가 신고했나 본데?"
경찰 앞에서는 손을 덜덜 떨었던 주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신고를 해??? 진짜 웃긴 사람이네?(사람이라고 안 했다 '놈'이라고 했다)"
같사남이 듣고 있다가 말한다. "가는 길은 내가 운전할게" 그 말을 듣자 안도감과 동시에 일종의 패배감이 몰려왔다.
조수석에 앉아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기분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 그건 '굴욕'이었다.
초보운전자의 굴욕. 그날 저녁에 같이 사는 남자에게 또 한 번 운전으로 굴욕적인 기분을 느끼고 눈물까지 핑 도는 지경에 이르러 이를 아득아득 갈았다. 내가 이곳에서 운전을 '잘' 하고야 말겠다!
그러나 '운전'처럼 손발을 직접 움직여서 하는 것들은 도무지 책으로 배울 수가 없는 것이고, 오직 많이 해봐야 기술과 경험이 느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는 매일 운전을 하다 보니 조금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 사이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낀 날도 만나고, 비가 마치 폭풍우처럼 쏟아져서 와이퍼가 전속력으로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비보호 좌회전 차량과 부딪히기 일보직전인 상황도 있었다. 그때마다 핸들을 쥔 손과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어둠을 삼킨 하이에나 같았던 밤에 운전을 할 때는 아이 앞이라 창피했지만 울먹이며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치들이 쌓여 운전고수까지는 못 되더라도, 다른 차한테 Too Slow로 리포트당할 일은 없을 정도는 된 것 같다.
며칠 전, 앞에 아무 차도 없는데 이상하리만큼 느리게 가는 차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말했다.
"아니, 대체 뭐 하는 거야?"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혼자 있던 차 안에서 정말 크게 웃었다.
그랬구나.
'이제야, 비로소' - 이런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나를 신고했던 흰색 소*타의 차주에게 종종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실 초반에 경찰을 만난 덕분에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덕분에 '도로 위의 운전자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앞의 차가 다소 느리게 가더라도 더 초보였던 나를 기억하며 웃을 수 있고, 뒤의 차가 혹시 나를 추월해 가더라도 '당신도 초보 때가 있었으니 너무 위험하게 운전하지 마쇼' 하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희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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