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배신
솔직히 말하자면 캐나다 출국을 준비하며 '그레이브스병' 완치 판정을 듣길 내심 기대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정상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장면처럼. 하지만 호르몬은 여전히 나에게 조금 'upset'해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계절에 떠나 캐나다에 도착했으나, 이곳은 벌써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캐나다로 출발하기 3일 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새벽에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반응)가 일어나 입술과 기도가 부었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왔다. 다음 날 가까운 병원에서 알레르기검사를 받았는데, 거기서 '나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작나무, 오동나무 등등 종류도 다양하게 골고루 있어서 마치 <종합 Trees 선물세트> 같았다.
알레르기 결과를 받아 들고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거부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나무와 풀숲을 좋아해서 매일 공원을 산책하는 자칭 공원러버인데! 게다가 캐나다처럼 숲이 무성한 곳에 가는데 괜찮을까?
아이와 함께 지낼 곳을 캐나다로 결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Gardian으로 함께 가는 내가 좋아하는 나라여야 했고, 공기가 맑고 초록색이 많은 곳을 원했다. 12년 전에 처음 와봤던 캐나다는 자연환경이 축복받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곳에서 살아보리라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지금 생각하니, 처음 방문했던 6월이 가장 좋은 시기여서 그랬는 지도)
'캐나다'는 땅의 면적이 대한민국보다 약 100배 넓다. 그중 우리가 선택한 도시는 대한민국의 10배 정도인 온타리오주안에 있는 ‘런던(London)’이라는 작은 도시다. ‘런던’은 토론토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Forest city London’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공원이 많고 숲과 환경이 좋은 곳이다.
과연, 실제 와보니 초록초록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어딜 가나 큼직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고, 푸르고 넓은 잔디밭,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운 거리-물론 다운타운은 꽤 북적인다.
*문제는 아름다운 단풍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동안 몇 번의 조깅을 했는데, 공원에 다녀온 날이면 저녁마다 온몸이 간지럽고 벌건 두드러기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아나필락시스 상태까지 가진 않았지만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건 확실했다. 처음엔 갑각류 알레르기를 의심했지만 결국 공원에 가서 나무들과 많이 접촉한 날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자연을 사랑해서 캐나다를 택했는데, 정작 캐나다의 자연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난 단풍국의 공원에서 나무가 많지 않은 곳을 골라 걷거나 뛰어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했다. 언제나 내 편인 줄 알았던 나무에 그런 과민반응을 하다니. 나무가 날 배신한 것인지, 내 몸이 날 배신한 것인 지 알 수 없다. 오랫동안 약을 복용해서 면역체계가 흐트러져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원러버'의 일상은 뒤에도 계속된다..!
한국보다 13시간이 느린 이곳에 도착해서 며칠간 시차적응을 하느라 비몽사몽이었지만, 딱 3일째 되는 날이 내 생일이었다. 생일맞이로 나이아가라 폴스(나이아가라 폭포) 투어를 예약해 두었는데 그날 아침엔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후회해서 무엇하리-생일은 즐거워야 한다.
한국에서 건미역을 챙겨 와서 부지런을 떨면 미역국을 끓일 수도 있었으나, 내 손으로 본인 생일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어쩐지 애처로웠다. 미역국은 다른 이가 끓여줘야 제맛이다. 그래서 생략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멀리서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런던에서 두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경이로웠다. 입을 떡 벌리고, 자연이 준 선물에 감탄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런 대단한 자연을 보유하고 있는 캐나다가 마구 부러울 지경이었다. '폭포' 하나만 잘 둬도 시티하나는 거뜬히 먹여 살린다.
나이아가라 만세!
그렇게 3일 동안은 시차적응과 나이아가라 투어, 그 후 4일은 살아남기 위한 세팅을 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며칠 동안 마트를 돌아다니며 매일 장을 본 것 같다. 딸랑 어른 한 명과 아이 한 명일 뿐인데, 몇 달을 다른 땅에서 살려니 준비할 게 많았다. 일주일이 지나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나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해 갔다. 그 일주일 뒤의 3일은 캐나다에서 운전초보로 버벅거리는 시간이었다. (고백하건대, 아직도 야간운전은 무섭다)
열흘간의 미친 바이브를 거쳐 같이 살던 남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고, 드디어 아이와 둘만의 캐나다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은 캐나다라는 큰 나라에서도 작은 도시인 ‘런던’과 주변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것도 이 넓은 땅 중 일부 지역에서 고작 몇 달을 살아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행이 아닌 ‘살아본다’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동안 좀 더 많은 걸 경험해 봐야지!라고 생각했더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연속되는 경험들은 내 서사에도 반영되었다.
캐나다에서 ‘나’로, ‘엄마’로서 살아가는 이야기.
이건 그런 이야기다.
희노가
*다음 이야기: 운전 초보, 단풍국 경찰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