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형태

회복의 순간들을 따라

by 희노가

여러 번 다시 펼쳐본 책 가운데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이 있다. 출간된 지는 꽤 되었지만(2011),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책이다. 그 책 속에는 자신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알아보는 테스트문항이 들어있었고, 자가테스트를 해본 결과 예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그때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가보다' 하면서 은근히 뿌듯해한 것이 기억난다.

실제로 긍정적인 편이기도 하고, 나의 마음회복력은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물론 '회복탄력성'이 높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고,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님을 안다. 다만 거기서 빠져나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마음의 스프링보드가 장착되어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2026 동계 올림픽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바로 우리나라 첫 금메달을 안겨준 최가온 선수(스노보드)의 경기. 최가온 선수는 스노보드를 타고 하프파이프라는 U자형 구조물에서 도약과 점프를 하는 상당히 고난도로 보이는 종목에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선 1차에서 어딘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떨어졌다. 2차에서도 중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과연 저 선수가 끝까지 뛸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3차에서 그녀는 결국 끝까지 경기를 해냈고 최고점수를 받았다. 1차를 보며 비명을 지르던 입은 나중엔 놀라서 다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분명 무섭고 두려웠을 텐데, 아직 앳되고 가녀린 소녀가 커다랗게 보인 순간이었다.


저런 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일까. 두렵지만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나중에 그녀는 3군데나 골절을 진단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경기장면은 동계 올림픽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너무 멋있어서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였지만 난 이미 그녀의 이모뻘 정도의 나이가 되었으니 그럴 순 없겠지. 그것보다 그녀의 몸도 빠르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몸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몸의 회복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약간 슬퍼진다.

'몸의 회복력'은 마음근육보다 오히려 근력이 약한지, 아니면 슬슬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지, 회복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나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걸.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며 몸의 회복을 위해 쓰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30분 낮잠'. 사실은 15분도 가능하다.

이건 요가원을 하면서부터 가진 습관 중에 하나인데 짧지만 효과가 강력하다.

오전수업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알람을 맞춰놓고 최소 15분 정도 누워있는 시간을 가진다. 꼭 잠에 들지 않아도 좋으니 휴대폰은 멀리 떨어뜨려놓고 그저 눈을 감는 그 시간이, 저녁까지 살아낼 힘을 주었다. 캐나다에서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낮의 시간이 몸의 회복을 도왔고, 덕분에 건강히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계속 아이가 방학이라 그 시간을 잘 획득(?) 하지 못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갔다 들어온 날이면 잠시라도 눕게 된다. 아마도 짧은 낮잠이 나의 작은 회복임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겠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특별전이 성황리에 전시하고 있다. 아이에게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서사와 난중일기에 쓰여있는 인간적인 면모등을 알려주고 싶어서 다녀왔다. 오히려 나와 같사남(남편)이 소위 말하는 '국뽕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잔뜩 고무되어 나왔지만 말이다.

전체적인 구성도 매우 좋았지만 <난중일기>에 가장 마음을 빼앗겼다. 충무공이 무려 7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쓰신 일기. 그 기록은 날씨만 간단하게 쓰여 있는 날도, 일이 많은 날에는 절절하게 쓰여있는 날도 있었다.

번역된 난중일기를 이리저리 들춰 보며 문득, 이 위대한 충무공은 자신이 쓴 일기가 몇 백 년 후의 사람들에게 읽히리라 생각이나 하셨을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만큼 대단한 기록이 될 줄 아셨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또한 그렇게 매일같이 걱정하던 어머니를 여의고, 아들을 먼저 잃고, 자신의 건강을 잃어가면서, 한 인간으로서 정말 지독히 외로웠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라가 어려운 중에 공무를 보면서 썼던 이 일기는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면서, 그분 자신에게는 개인적인 '회복'의 한 형태로 쓰인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일기를 쓰면서 그 하루를 조금씩 회복하는 충무공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래전의 치열한 기록을 이렇게 볼 수 있는 행운에 감사했다.


충만하게 전시를 보고 집에 와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역시 피로가 회복되었다.

'회복'에 대해 쓰는 이 글도, 내게는 다른 형태의 회복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얼마 전에 브런치에 올린 글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잠깐 이야기해도 되냐며 내 글을 길게 혹평한 댓글이 달렸었다. 말이 평가지, 악플에 가까운 글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그 댓글을 보고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조금씩 냉정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평가를 받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으며, 이 정도로 무례한 글은 무시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 글이 매우 무례했다는 것에 같이 분개해 주셨기 때문에 위로도 받고, 마음을 회복했다.

문제의 댓글은 대응하지 않았더니 스스로 힘을 잃고 사라졌다(그 사람이 삭제했다).


첫 악플은 사라졌지만 앞으로도 글을 쓰는 삶을 살다 보면 언제든 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릴 수는 있겠지만 휘둘리지 않고 싶다. 그럴 때마다 회복하고,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내 성장의 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마음의 회복 근육도, 글 근육도, 몸의 근육도 단련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든 사람이든, 어디선가 상처받는 이들이 어떠한 형태를 통해서든

매일매일 조금씩 회복되는 삶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삶은 축제다"

-희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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