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부정 사이에서
나는 내 실수나 단점은 쉽게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11년 전, 아이를 가진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버벅거렸다. 재작년에 그레이브스병에 걸려 갑상선항진증이 나타났을 때도 더 이상 뛰면 안 된다는 것과, 이제는 요가원을 더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받아들이는데 애를 썼다.
인정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을 뜻한다. 때로는 인정하기 싫다.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내 존재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라카미하루키 작가는 에세이에서 본인을 '아저씨'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분명히 썼다. 그 에세이를 쓸 당시 작가는 50살 정도의 나이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아저씨라고 인정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 역시 그러기로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어디서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은 적은 없다. 처음 듣게 되면 충격을 받을까. 친구들은 이걸 '美친 아가씨 병'이라고 부르는데, 나를 포함해서 걸린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렇다고 내가 '아가씨'라는 것도 아니지만 아줌마는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쩌다 '아줌마'는 중년의 여성을 일컫는 호칭에서 [억척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상황별로 아가씨와 아줌마를 구분하는 방법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할줌마라는 말도 나오는 걸 보니 '아줌마'도 점점 진화한다. 나는 그 진화된 '아줌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차라리 아줌마를 건너뛰고 할머니가 되는 것을 택하겠다.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정의할 힘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있다고 한다. 나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남한테 인정받는 것에만 너무 신경 쓰다 보면 물 없이 먹는 건빵처럼 삶이 퍽퍽해진다. 어차피 세상일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며, 다른 사람의 인정 또한 흔들리기 쉽다.
결국 스스로를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진정한 정신승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줌마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다!
삶은 축제다
-희노가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