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온 전화였다.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채 사과 한마디로 두 번째 실례를 멋대로 무마했고 자신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여자가 늦은 새벽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 결코 실수일 수는 없다는 데 불쾌감이 과도하게 밀려오며 잠을 방해했다.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을 때도 누구냐 묻는 날카로운 질문에 여자는 일방적인 사과를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이른 아침 비에 젖은 거리는 한적했다. 빗소리를 듣지 못한 탓에 누군가 물장난을 쳐놓은 것같이 날씨조차 은밀하거나 음흉하다고 느껴졌다. 그도 아니면 잘못 온 전화에 잠을 설친 과민함과는 반대로 자신이 이렇게 둔했던가를 생각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이미 그쳐버린 첫눈이 녹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서운함이었다. 이른 시간 몇 없을 손님을 받기 위해 문을 여는 미용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동네 미용실이라 하는 것도 아줌마들의 수다를 참아줄 수 없다는 듯 속속들이 모습을 감추고 출장을 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한 지 오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는 언제나 한적했다.
미용사는 내 또래로 보였는데 커다란 덩치에 걸친 검은색 원피스가 커트 준비를 하는 동안 아슬아슬하게 오르락거렸다. 작은 미용실 내부가 거의 비친다고 해도 좋을 커다란 전신거울로 자꾸만 드러나는 미용사의 다리를 훑었다. 첫 손님일 것이 분명한데도 과장된 친절보다 자기 업무에만 묵묵히 집중하는(그 집념도 과장돼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미용사에게 잘못 걸려온 전화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럼 이 꼬리를 잘라야 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층진 머리를 다시는 다듬을 일 없게 다듬어 달라는 나의 요구에 미용사는 어깨에 닿아 뻗치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거울 속으로 말을 붙여왔다. 미용사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깨끗한 미용가위에 목을 찔리는 상상이 동시에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미용사는 사정없이 머리칼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다시는 다듬을 일 없다는 것이 중요하지 꼬리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미용사의 손길을 불안하게 살폈다. 긴 머리칼이 가차없이 잘려나갔다. 오랜만에 하는 커트머리가 제 자리를 찾은 듯 편안했다. 그는 긴 머리를 좋아했다. 미용사는 머리색이 또 바뀌어 있었는데, 허리까지 닿는 머리칼이 상하지 않고 온전할 수 있는 것에 다른 노하우가 있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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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네 블록에서 끝난다. 건물과 건물은 얼마간 거리를 두고 서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후미진 샛길은 아니다. 어린아이 한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정도로 실제로 이용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런 탓에 노숙하는 노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처럼 건물 간의 차이점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작은 문패에 적힌 건물명만이 구분을 가능케 하지만 꼭 같은 글씨체로 홈을 판 대리석 재질로 되어 있다. 따로 인도가 없으므로 찻길이라 하기도 어려운 길가에 주차된 차라고는 중형 승용차 한 대뿐이다. 금세 차량은 견인된다. 마지막 블록 길가에 차를 세운다. 내 차도 머지않아 자동 수거될 거였다.
같은 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빌리지를 찾은 일이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이 마을 구석구석을 거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마을이 시작된다고 하는 곳은 미국 중부의 사막을 연상시키듯 황량한 무지 멀리로 사육장같이 밀집된 건물들이 어렴풋이 보일 뿐 아니라, 들어오는 차량이 실시간 중계되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는 다름 아닌 빌리지 거주민들인데 치안을 위해서라는 일차적인 이유는 배제해두고라도 수백의 눈동자가 자신의 삐져나온 코털까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관측의 대상은 누구라도 이 낯선 마을의 출입을 기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끊임없이 빌리지에 세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살고 있으며 마을 구석구석을 실시간 촬영한 CCTV 채널을 손에 쥐게 된다면 이곳을 떠날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관리인 사내는 백발에 외팔이었다. 외부침입이 불가한 만큼 관리인은 외부와 최소 소통의 중계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만큼 홀로 살고 있는 거주민들의 권리를 거머쥐고 있었다. 드물지만 여자 거주민을 상습적으로 범해오다가 결국 고통에 견디지 못한 피해자에게 살해당하고, 각종 물품을 조달해주지 않는 관리인을 의심쩍게 여긴 타 거주민들의 신고로 빌리지가 기자들의 발길(물론 기자들도 개인으로 움직인다)이 잦아진 때가 있었다.
의수를 하지 않은 관리인의 오른쪽 옷깃이 힘없이 흔들렸다. 신분을 확인했다. 관리인은 건물 전 층의 약도가 그려진 팸플릿을 조그만 창 너머로 건네고는 커튼을 닫아버렸다. 약도 밑에는 간략한 행동방침 따위가 쓰여 있었다. 거주자에게 무엇을 캐묻거나 일일이 설명을 늘어놓지 않도록 관리인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빌리지의 거주민들은 이 시스템에 흡족했다. 건물 구조는 마을과 다름없이 문에 박힌 호수가 아니면 방과 방 사이의 분별을 하기가 어려웠다. 전 3층 건물의 두 층에만 각각 네 가구가 살고 있었다. 복도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 괴괴했다.
간소한 짐을 풀고 포스트잇에 사물의 명칭을 반듯하게 적었다. 한 장에 한 단어씩,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문을 가진 한 남자가 만물의 명칭을 뒤섞어버리고 끝내 세상과 단절돼버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갓 씻어 껍질도 벗기지 않은 과일들처럼 은둔생활의 시작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언젠가 자신이 의미나 이름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의문을 가지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처럼 포스트잇이 여기저기서 흔들렸다. 대수롭게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벌써 그것들의 이름은 생소했고(어쩌면 자신의 목소리가) 책상을 책상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진 남자가 아주 가까운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구는 최소한으로 배치돼 있고,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수고마저 덜기 위한 설비가 갖추어진 방은 차가우리만큼 현대적이었다. 명칭을 적을 일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던 사방이 포스트잇으로 제법 가득차자 안락함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어떤 불편한 것들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사치스럽지도 않은 생활을 해가면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살다가 어느 때 세상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었다. 남은 생을 조용히 흘려보내고 마지막 할 일을 기다리는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관리인에게 거울을 전부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외팔이인 그의 행동은 누긋했고, 도심에서 떠나온 지 얼마지 않은 나로서는 답답증이 일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나 다시 자신이 거머쥔 태평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하얗게 쇠어 미동 없는 그의 뒤통수를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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