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에 누워 강렬한 라이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것이 곧 <우주의 눈 A2>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눈이 오글거리며 영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눈을 감지 않으려 애썼지만 영이 깨어났을 때는 걷기조차 힘든 고통이 이미 몸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었다.
망연히 돌아선 영 뒤로 놀란 쥐 떼가 쏟아져 나왔다. 쥐들은 동네 곳곳으로 흩어져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었다. 나도 쥐나 다름없어, 그러니 나를 끼워줘. 영의 고슴도치는 쥐들과 한 데 섞여 영이 돌돌 말아 버린 생리대를 끄집어내 코를 들이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가 수단이든 목적이든 간에 함께 살아서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고슴도치에게처럼 그것은 유일한 타인에게 기꺼이 해야 할 도리 같은 거였다. 영은 약자에게 약했다. 강자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버티는 악이 있었다. 그게 약점이며 여태 살아오게 한 힘이라는 것을 영 자신은 새삼 느꼈다. 그러자 소름끼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측은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조금의 경계도 없이 아이는 영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착상되긴 했지만 육안으로 보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기 전에 사라진 그와 영의 아이. 그것이 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형태를 갖추었더라면 영은 마음을 바꿨을 것이다. 그러나 적정 시기를 놓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영은 아이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건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었어요. 이제 영은 자신 있게 결백을 외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이쯤에서 영은 소문으로 진실을 좀먹게 하고 헛갈리기 시작한 사실로 영을 패배하게 만들려는 납치범의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납치범은 그들 중 하나였고 영을 심판하려는 듯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때, 천장이 열렸다. 마치 상자처럼.
*
열린 천장 위로 영과 아이를 내려다보는 것은 거대한 눈동자였다. 저릿한 복통이 다시 시작되며 영을 장악했다. 그리고는 자신과 똑같은 연갈색 머리칼이 아이가 배 밑의 상처를 헤집고 나왔다는 흔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새끼를 먹어치운 고슴도치를 떠올렸다. 나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영은 고슴도치가 측은했다. 이곳은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부모 된 도리로 고슴도치는 최선을 다해 새끼를 먹어주었다. 새끼의 고통은 찰나였다.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지 하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어떡하든 그건 아주 개인적인 감정이니까. 영의 발치에서 아이는 대자로 뻗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 영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천장 너머 존재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있었다. 전시에서 영을 사로잡았던 그림 한 폭과 흡사했다.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는 거죠? 존재에 비해 자신이 작다고 느껴진 영이 배에 힘을 주어 외치고는 욱신거리는 복통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영은 천장 너머 존재가 하는 말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지만 전 느낄 수 있어요, 저 아이는 제 아이예요. 네 아이가 아니래도.
그가 찾아오지 않자 영은 계속해서 남자들을 불러 모았다. 남자들 중 누군가는 영과 그의 소문을 부풀리는 데 일조했을 것이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영은 고적한 집이 싫었다. 휴대폰 주소록에서 영을 거절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들은 영의 전화가 있은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달려왔다. 이제는 얼마든지 침대에서 법석을 떨 수 있었다. 새끼 밴 고슴도치 같은 건 없었다.
어쨌든 아이는 죽었다. 영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토악질을 했다. 이런 곳에 둬서 미안했단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미안함이 실려 있었다. 제가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마세요. 영은 말을 잇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짓는다 해도 커다란 눈은 위협적이기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 몇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너무 커서 대화라기보다는 불규칙적인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이제는 네 개의 눈이 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를 용서하거라.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용서란 피해자가 아직 갇혀 있기 때문에 꿈꿀 수 있는 추상이 아닌가. 영은 오한을 느꼈다. 할 수만 있다면 벽을 기어올라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 곁에서 영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어머니를 향해 원망의 눈길을 던졌다.
벌써 나를 알아보나봐. 쳐다보는 것 좀 봐요, 여보. 어머니는 아이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에 들어? 오는 동안 힘들었을 테니 쉬게 내버려 두자고. 방은, 아니 상자는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배송되었다. 이제 막 착상된 수정란처럼 영은 작았다. 부모는 영에게 붙여줄 이름을 의논하기에 바빴다. 울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