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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알려줘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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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Aug 21. 2024

<알려줘> -2-


추석 아침이었다. 전날 이모는 외할머니가 잔뜩 차려놓은 맛있는 음식을 평소보다 더 먹지 않았다. 웃기도 많이 웃고 말도 많이 했다. 우리가 웃지 않을 때도 웃었고 내가 그래? 하지 않는데도 말을 계속했다. 또 다시 이모가 낯설었다. 외조부모와 엄마아빠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이모가 내미는 술잔을 빼앗았다. 이모는 아쉬워하면서도 약을 먹어야 하니까 참으라는 외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금세 뾰루퉁해져서 상을 치우기도 전에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도 이모를 따라 이불 위에 누웠다. 술은 맛없는데 왜 먹어? 네가 아직 술 맛을 몰라서 그래. 그래? 마음을 풀기를 바라며 내가 말했지만 이모는 등을 돌리고 누웠다.

전날 밤의 일 때문이었는지 가족들은 밥상에서 말이 없었다. 오로지 이모만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사이사이 TV 소리가 파고들었다. 이모는 질 수 없다는 듯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엄마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빠가 나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 언니는 왜 그랬어. 이모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힘찼고 그래서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뭐가? 엄마가 묻자 이모는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왜 그게 내 흠인 것처럼 엄마한테 일러바쳤냐고.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약점이야? 외할아버지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너는 언제적 이야길 하는 거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가 이모에게 대꾸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아빠가 처제, 변태야? 말하는 것과 동시에 이모는 소리를 지르며 집을 뛰쳐나갔다.


이모는 한 해에도 몇 번씩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했다가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내가 원래 알던 이모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되면 다정함을 되찾았다. 그 사이 나는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머리를 한 여자애들이 다니는 여중이었다. 내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동안 이모는 머리를 바짝 짧게 잘랐다. 대학병원에서 막 나왔을 때도 이모는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점점 짧아지는 머리카락과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팔다리의 문신들로 외조부모의 못마땅한 소리를 고스란히 들었다. 이모는 더 이상 우리집에 머물지 않았고 나도 다니는 학원 개수를 하나둘 늘리던 참이었다.

지난 해 남은 학기를 마치며 이모는 무사히 졸업했다. 곧장 작은 회사에도 들어가 일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약을 챙겨 먹고 치료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외조부모와 부딪히는 일이 잦았지만 이모는 다시 살아가기를 택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명절 아침에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소연이를 많이 좋아하게 되면 엄마는 나를 버릴 거야? 그때 흔들리던 엄마의 눈빛과 아니지, 하는 대답을 들으면서 누구보다 당황한 건 나였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족이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창밖으로 흐르듯 지나가는 차들의 행렬을 내다보며 일상을 살기 위해 남보다 곱절로 애쓰고 있을 이모를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그랬듯 학교를 갓 졸업한 이모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때마다 이모 몸에는 크고 작은 문신이 늘었다. 긴 옷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부위까지 그림과 글자를 새겼다. 주영이는 시집 가지 말고 이모랑 오래 놀자. 시집 가면 못 놀아? 아무래도 어렵지. 그래? 이모는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가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이모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거나 이모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으면 성난 고양이처럼 돌변했다. 나는 이미 안 평범하다고, 이모가 말하면 외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말을 아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모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이모가 편지를 써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답장을 쓸 자신이 없다고 주저했다. 그럼 이메일은 어때? 아무래도 손편지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모가 내 이메일 주소를 받아가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 이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보다 이모의 이메일에서 계절감을 느꼈다. 멀리 살지 않는데도 이모는 날씨 이야기를 했고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채근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메일은 짧을 때도 있었고 길 때도 있었다. 이메일 말미에는 항상 내 안부를 물었다. 주영이 너는 요즘 어때?

처음에는 어떠냐는 질문에 학교생활에서 겪은 사건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또 다시 주영이 너는 요즘 어때? 묻는 이모의 끝말은 어딘가 내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는 뜻으로 읽혔다. 내게는 기분을 나타낼 어휘가 많지 않다고 느꼈다. 즐거웠다거나 기뻤다거나 슬펐다는 표현 정도가 전부였다. 이모의 이메일을 읽기 전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몰랐다. 요즘 이모는 바닥이 없는 하수구로 쏟아지고 있는 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음은 더러운 시궁쥐보다도 더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거랬다. 이모는 슬프다는 말없이 자신의 암담함을 드러냈고, 이렇게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이 뱉어내고 뱉어내다가 마음이 심하게 다칠 수 있다는 게 의아했다. 하지만 이모가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은 것처럼 나도 이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 않았다.

몇 번째 직장인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모가 온가족 앞에서 선언을 했을 때 외조부모뿐 아니라 엄마까지 나서서 화를 냈다. 그때 이모는 어느 때보다 슬픈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상대가 알아듣지 못할 설명을 그만두기로 체념한 듯했다. 얼마 후 이모는 외조부모 집을 나갔다. 서쪽 서울 어딘가에 방을 구했다고 했다. 엄마아빠는 회사로, 나는 학교에 있던 월요일 아침이었다. 외조부모가 이모를 태운 용달을 배웅했다. 잘 도착했다고 전화가 온 뒤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없는 번호라는 음성안내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가족들은 기다렸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매일 이메일 수신함을 들락거렸다.

스팸메일로 가득 찬 수신함 가운데서 이모로부터 온 새 연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모는 자신이 버림받기 전에 가족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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