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알려줘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희오 Aug 20. 2024

<알려줘> -1-

평생 사랑받고 싶어 사랑했지만 저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추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습니다.

많은 분들을 계속 상처 입히기보다 제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불빛 한 점 없는 밤중에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자 새로 산 겨울잠바가 툭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바라본 엄마는 커다랬다. 어디를 가는지 설명도 없이 아빠의 렉스턴에 올라탔다. 서울에서 한참 달려 다다른 곳은 낯선 지역도시의 한 대학병원이었다. 약을 모조리 삼켜버렸다고 했다. 위 세척을 했다고 했다. 왜 약을 삼켰고 어떤 마음으로 약을 모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모는 자취방에 종이 한 장을 남겼다.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2021년 11월 23일,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났다. 그리고 이모는 죽다 살았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한 아이였다.

마지막 학기 도중 사고를 일으킨 이모는 학업을 중단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며 한달 내리 자고 있다고 했다. 이모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다. 이모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 마음 속에서 이모는 이미 소설가였다. 학기 중에는 지역에 있어서 이모를 만날 수 없었다. 그래도 때마다 이모는 크고 작은 선물을 보내왔다. 크리스마스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 담긴 빨간 가방을, 생일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한 상자 부쳤다. 엄마아빠의 결혼식 사진에도 내 돌잔치 사진에도 어린 이모는 함께였다.

내가 훨씬 어렸을 때 이모는 나에게 분유를 먹이고 내 등을 두들겨주었다고 했다. 그러다 먹은 걸 전부 토해냈을 때도 이모는 토사물을 맞으며 내 등을 두들겨주었다고 했다. 어린 이모는 갓 태어난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결혼 전 임신소식을 전해왔을 때도 이모는 울었댔다. 내 기억에 이모는 눈물이 많은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사건 직후 만난 이모는 무표정했다. 웃는 얼굴은 일그러져 우는 것 같았다. 이모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족모임에서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는 일도 잦았다. 나는 낯선 지역도시에 오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결론 지었다. 그곳에서 이모는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온식구가 외할머니 집에 모였다. 이모의 방학이 아니면 모일 수 없는 자리였다. 아빠는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혼자서 노력했다. 커다란 제삿상에 배달시킨 중국요리가 즐비했다. 이모는 몇 젓가락 먹지 못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대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욕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이모가 감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욕실을 나왔을 때 막 식사를 마친 외할머니와 엄마는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이모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외할머니가 달려가 이모를 안았다.

그해 여름, 엄마가 나서서 이모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마무리 짓지 못한 학기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돌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과제로 출석을 대체했다. 엄마는 밤마다 레포트를 썼다. 그러는 동안 이모는 잠을 잤다. 아주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났을 때도 화장실만 다녀와서 다시 잠에 빠졌다. 엄마는 약 때문이라고 했다. 적응하는 동안엔 계속 잠이 쏟아질 거라고. 엄마는 약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엄마가 되기 이전의 엄마를 만난 적이 없었다.

외조부모는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엄마아빠는 경기도 깊은 곳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 학교를 마치는 내가 이모와 낮시간을 보냈다. 이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로 가득한 영화를 종일 봤다. 책은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글을 쓰지도 않았다. 우리집 TV 화면을 보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식사 때 깨어 있더라도 잘 먹지 않아 갈수록 수척해졌다. 매일 나에게 잊지 않고 오늘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물어왔다. 종알종알 많은 말을 늘어놓을수록 이모의 눈은 허공을 좇았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무심한 척 짧게 대답했다. 때마다 이모는 무언가 털어버리듯 고개를 흔들며 다정함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모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던 것이 꺼져버렸다는 걸. 그래도 상관없었다. 방학이 아니어도 이모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엄마아빠는 장난도 잘 쳤지만 엄할 때도 많았다. 내가 잘못을 시인할 때까지 묵직한 분위기를 풀어주지 않았다. 울면서 잘못을 빌어야지 내 눈물을 닦으며 다정한 태도로 돌아왔다. 이모는 속이 텅 빈 종이인형 같았지만 한 번도 나에게 화낸 적이 없었다. 그런 이모가 좋으면서도 때로 무서웠다. 화를 내지 않아서 화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멀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면 자고 일어나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있을지도. 내가 외동인 것처럼 사실은 엄마에겐 동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이모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이모가 어떻게 아픈지 몰랐는데,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슬프고 힘든 마음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모처럼 아플 수 있다. 무엇이 이모를 아프게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언제든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의 이름이 불안이라는 걸 그때 나는 몰랐다. 불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외할머니도 엄마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모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이모를 살피고 몇 마디 나누며 같이 간식을 먹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엄마, 다음번엔 외할머니 전화였다. 나도 이모도 괜찮다, 무사하다고 해야지 전화를 끊었다.

이모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는 다니던 태권도학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아이들 앞에 나서는 게 즐겁지 않은 때였다. 이모가 보여준 영화 중 하나는 중국감독이 만든 미국영화랬다. 중국사람이 만들었는데 어떻게 미국영화야? 내가 물으면 이모는 설명하느라 조금 열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게 된 이모에게 영화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모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 대꾸하면 이모는 웃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그래? 그래? 대꾸했다. 그때마다 이모는 해사하게 웃었고 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처럼 보였다.

이전 09화 <홈> -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