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어린 요조는 생각했다. 엄마와 단 둘이 꾸려가는 살림은 너무 단촐했고, 이따금 찾아오는 엄마의 애인이 자고 갈 때면 좁은 집이 꽉 찼다. 혼자 남은 방 두 칸짜리 집은 금세 황량해졌다. 빈 집에 데려와 엄마와 엄마의 애인이 뒹구는 침대 위에서 먼지를 폴폴 날리며 함께 뛰어보고 싶었다. 그게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요조는 자기를 두고 떠난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와 운동에 매진해왔다. 하나뿐인 엄마는 그래야 된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요조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내심으로는 눅눅해진 이불을 같이 덮고 싶지 않아서 혐오감을 느끼고 엄마의 비싼 영양크림에 핸드크림을 섞어 놓기도 했다. 뒤집어진 피부 때문에 엄마는 한동안 애인을 데려오지 않았다.
이십대가 된 후에도 마음에 담은 예쁜 친구들은 있었지만 집에 초대하기까지 성사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요조가 부러 성사시키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 사이 엄마의 애인은 두어번 바뀌었다. 셋이서 자면 먼저 곯아떨어진 요조의 엄마를 타넘고 요조의 옆으로 오던 두 번째 애인. 요조가 몸을 슬쩍 피하거나 소스라치게 놀라 방을 나가기를 몇 번,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적을 기억한다. 엄마는 말없이 창고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자라, 는 말이 전부였다. 빈도는 줄었으나 여전히 두 번째 애인은 요조와 엄마의 집에서 잠을 잤다. 때마다 요조는 방문을 걸어잠글 수밖에 없었다. 꽉 닫히지 않는 문을 들고 밀어서 억지로 잠궜다. 안방 침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삐걱거리는 문 하나를 방패로 쥐어줘놓고 자신을 보호하지조차 않는 엄마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었다.
경우와는 사이트에서 만났다. 경우의 글을 읽자마자 단박에 알았다. 바로 요조가 찾던 여자아이라는 것. 그때는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첫 연애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우는 요조에 비해 경험이 너무 많았고,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도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서 숨김 없이 말하곤 했어. 요조는 경우가 또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야기를 끊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으므로 속수무책으로 상처받았다. 요조는 자신에게도 있었을 첫사랑을 생각했다. 하지만 곧 기억 속 자신의 첫사랑은 풋내기 장난같이 느껴졌다. 더구나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때 경우는 반짝 빛이 나곤 했다. 이야기 속 상대가 요조 자신이기를 깊이 갈망할 정도로.
요조와 처음 만나던 시기에 경우는 막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약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아침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요조와 낮술을 마셨다. 돌판 위에서 얇은 미국산 돼지고기가 익고 있었다. 경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연거푸 소주를 마셨다. 요조는 잔만 부딪힐 뿐 걱정스레 경우를 건너다볼 뿐이었다. 작고 부서질 것 같은 경우가 마침내 울음을 그치고 원형 테이블에 이마를 박으며 쓰러졌다. 요조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처음 만나 집도 알지 못하는 경우를 데려갈 곳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택시를 잡아서 경우를 옮겼고 빠듯한 용돈으로 갈 수 있는 숙소를 잡았다. 그때 경우가 입고 있던 푸른 민소매 원피스와 똑바로 자른 칼단발을 손가락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몇 번이고 구토를 한 경우에게 가닿은 것은 먼저 요조의 입술이었다. 경우는 한치의 머뭇거림이나 어색함 없이 요조를 받아들였다. 어렴풋이 술 기운이 가셨을 때 경우는 민망해 웃었고 큰 눈으로 요조를 건너다보았다. 요조는 단박에 경우를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알았던 것 같다. 경우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요조에게도 전염되리라는 것. 요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슬픔은 그에 보태져 몸집을 한없이 부풀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알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감정은 예상 밖의 진행을 좋아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요조는 자신이 경우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른 여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인다면 그것은 언제나 엄마의 애인들이다. 그걸 행동에 옮기지 않게 다잡아주는 것은 엄마의 소망 때문이고. 경찰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을 때 경우의 놀라던 눈을 기억한다.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요조는 생각했다. 자신이 정말로 경찰이 된다면 경우 또한 기뻐하리라는 것.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경우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을 것이 분명했다. 경우는 요조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진실로 아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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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승을 처음 만났을 때 요조는 도마뱀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잘린 꼬리에서 자라난 가짜 꼬리 같은 사람이라는 감상이었다. 다시 자란 꼬리는 처음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는데 뼈가 새로 자라지는 않고 연골 비슷한 무언가 꼬리 행세를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요조는 단번에 은승을 알아보고 경멸했다. 그가 경우의 은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은승은 알아서 실토했기 때문이다. 은승이 만난 경우의 이야기, 5년 간 경우를 괴롭혔던 첫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 누군가 본다면 경우 역시 은승 이야기를 흘리는 죄를 저지른 것이겠지만 요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고통에 찬 신음이었다. 경우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고 요조는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가 찾으면 언제나 달려갔었고.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관계인지는 몰라도 요조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요조와 경우의 관계는 세 달을 넘지 못했다. 짧게 끝나버린 관계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까? 요조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어났고 엄마가 없는 빈 집에서였다.
만남 어플리케이션에서 은승과 마주치기 전까지 요조는 숱한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부터 목표가 은승이었던 것은 아니다. 경우와 만났듯 새로운 사람을 찾고 있었고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내리꽂혔다. 매치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면? 익명이 적어놓은 프로필의 키워드와 이어지는 대화를 단서로 요조는 은승인지 아닌지 헤아릴 수 있었다. 일단 은승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마음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걸러진 조건의 사람들에게 깊은 대화를 유도했다. 메신저로 연락이 이어지면 프로필을 보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요조는 은승이 아니라고 여겨지면 곧바로 대화창을 나갔다. 키가 크고 마른 손에 갈색 반점이 크게 나 있으며 맞춤법에 민감한 사람. 장소에 제한없이 자유롭게 번역일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요조와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 그의 이름이 은승이라는 건 몰랐지만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대화상대가 경우의 은승이라는 걸 확신했을 때 요조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추진했다. 가까우니 동네를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만난 은승은 전문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표정 하나 없이 저를 찍으실 건 아니죠? 물었다. 은승은 천진하게 웃으며 그건 실례죠, 했다. 그러곤 카메라를 집어드는 손에 갈색의 반점이 뚜렷이 보였다. 은승은 등을 돌려 야경을 담았다. 요조와 은승은 밤의 공원을 몇 바퀴고 걸었다. 언제부터 요조는 은승을 죽이기로 결심했을까,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런 밤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반복될 때마다 요조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게 되어갔다. 은승이 너무 싫고 또 좋았다. 무표정할 때 은승은 아름다웠고 잇몸을 드러내며 짓는 웃음에는 함께 실없어졌다. 자신이 여전히 경우를 사랑하기 때문에 은승마저 좋아하게 된 것인지, 미운 감정이 사랑으로 옮아가기도 하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둘은 적고 셋은 너무 많아. 엄마와 함께인 둘도, 경우와 함께인 둘도 어딘가 뚫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경우 없는 은승과 요조, 요조 안에서 기억될 경우까지 셋은 너무 복잡한 관계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늦지 않게 요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이제 은승의 과거에는 경우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한결 편해진 요조는 은승을 쿡 찌르며 졸랐다. 재밌는 이야기 해줘. 그러면 바로 어제 일처럼 경우에 대한 일화를 늘어놓는 은승이었다. 그앤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자꾸만 훔쳐보게 되는 그런 모습이었어. 그애가 큰 입을 벌리고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어. 경우 이야기를 할 때 은승은 평소와 다르게 유창했다. 평소 부끄러움이 많아 항상 웃음이 섞여 있었고 그 때문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요조는 그러면 다시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충분히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조는 경우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간직했다. 은승에게로 향하는 호감을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괴로웠다. 차라리 마음이 바뀌었다면 결정도 바뀌었을 테지만 요조는 자꾸만 가라앉았다. 바위를 뚫는 빗물처럼 그치지 않고 은승에게 복잡한 마음을 키워갔다. 깊게 패인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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