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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알려줘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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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Sep 02. 2024

<연골> -2-

10일 전 밤 11시경, 경우는 자고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경우를 믿지 않는 듯했지만 직업적인 불신일 수도 있었다.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은승과 꼭 붙어 지낸 시간만큼이나. 경우가 은승의 실종에 대해서 묻자 경찰은 아직 수사중이라고만 했다. 다만 은승의 측근들은 경우를 지목했다고 했다.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헤어짐을 곧바로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결국은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새 출발을 고대하며 만남 어플리케이션을 뒤적이고 있었으니까.

“뭘 지목했다는 건가요?”

“실종 전 힘들어했던 이유 말입니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경찰은 협조에 의례적인 감사를 표하며 경우를 내보냈다. 은승이 사라졌다. 자신과 헤어진 지 5년이나 지나서. 서에서 나오자 거친 겨울바람이 경우의 짧은 머리카락을 세차게 흐트렸다. 헤어진 지 5년이나 지난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일제히 진술한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사실 경우는 자신이 빗댈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굳게 믿어왔다.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고 은승을 비난한 뒤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다 케케묵은 먼지 같은 과거였다. 그토록 괴로웠던 경우의 시간도 지나갔으니 언제고 은승도 제 몫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십대의 절반을 넘게 함께했지만 은승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은승의 측근은 경우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경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따금 전해듣던 연인 은승의 말에 의하면 경우는 나쁜 연인이었으니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어도 둘의 헤어짐을 염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으니 그 집단적 의식이 이루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미워하는 마음이 통한다면 죽어 마땅한 사람은 경우였다. 숱하게 헤어짐을 고하고 매달리기를 반복하며 은승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했던 사람.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은승이 어떻게 경우를 불안하게 했는지, 경우의 불안은 어떤 질감이었는지 물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년이 넘는 시간을 반복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을 때도 경우는 비난을 받았다. 너무 한 순간의 결정이 아니냐고, 너무 갑작스럽다고. 그때 경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갑작스럽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다고. 예고된 슬픔은 괜찮은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멋쩍게 웃어 보였다.

경우는 정말로 자고 있었을까? 자신에게 되물었다. 서로 불려가긴 했지만 별탈 없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반박의 여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은승은 자살한 걸까? 그게 헤어진 지 5년이나 된 경우 때문일 수도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시는 열어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자물쇠를 풀고 철제 수납함에서 말보로를 꺼냈다. 한동안 필터 부분을 만지작거리다가 불을 붙였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5년은 은승의 손등 위 반점을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고, 은승의 마지막 행적을 연상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철제 수납함에는 가네샤 신의 목상이 시간의 흐름을 멈춘 듯 있었다. 10년도 더 된 그게 썩지도 않고 있었다. 은승과 헤어지고도 한참 동안 가지고 다녔던 목상이었다. 함께였으면 싶었을 여행지를 배경으로 목상의 사진을 찍었다. 어디선가 은승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어떤 톤이었는지 뿌옇게 남아 있었다. 은승은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놓지마. 그게 하찮은 물건 혹은 나일지라도, 자꾸만 놓고 달아나지마. 그래도 내가 꼭 너를 찾아낼게.”

경우는 언제나 달아났다가 돌아왔고 돌아온 길목에 은승은 주저앉아 있었다.


***


한동안 경우는 카페 문을 열지 않았다. 어설픈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길 바에야 문을 닫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은승과 헤어진 후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경우가 카페 문을 열어서 잠글 때까지 냉난방기 앞 구석자리에 앉아 제 할일을 하던 은승이었다. 꼭 붙어 지낸 시간을 콕 집어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함께 있었다. 은승은 프리랜서로 일했기 때문에 어디서든 노트북을 켰고, 경우는 매장이 바쁠 때라도 은승의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경우가 원하는 삶이었다. 은승은 흔쾌히 경우의 바람대로 옆을 지켰다. 실종기간이 오래되어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 죽은 거나 다름 없다고 판단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경우는 은승을 생각했다. 어디선가 종적을 감추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은승의 해사한 웃음 같은 것들. 경우보다 키가 훌쩍 컸지만 어딜 가든 고사리 손이라는 얘길 듣던 그 얇고 하얀 손가락으로 여권을 건네는 모습들, 바삐 움직이는 긴 다리 모양새.

경우는 자신 안에서 은승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은승은 오래 살아야 했다. 경우와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게 맞았다. 여태껏 은승이 어떻게 자신을 불안하고 힘들게 했는지 쏘아붙인 뒤 연락처를 차단해버렸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경우가 없어도 은승이 살아가리라는 사실. 그건 지난 5년 간의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경우가 숱하게 죽겠다고 말하는 동안 은승은 한 번도 죽음을 예견한 적이 없었다. 죽고 싶다는 말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푸른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경우는 손가락으로 그 질감을 느끼다가 벌떡 일어나서 사진을 찍었다. 중고 어플에 번듯한 소파 사진을 올렸다. 소파에 깃든 은승과 함께한 기억 때문은 아니었다.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소파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당장 팔아치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격을 헐값으로 내렸다. 순식간에 거래를 문의하는 연락이 쏟아져 들어왔다.

요조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진 건 용달차에 실려 떠나는 소파가 푸른 점이 되어 사라졌을 때였다. 요조의 선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얇고 높은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봐. 너무 한 순간의 결정이잖아. 요조는 울고 있었다. 하얀 코끝이 새빨개져 있었다. 경우는 표정없이 말했다. 그 사람을 못잊겠어. 이런 상태로 네 옆에 있는 게 괴로워. 그런데 분명 며칠 전 채팅창 속 요조는 사과를 했다. 그때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그 말은 요조가 아니라 경우가 해야 할 말이었다. 그 말은 요조가 경우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요조는 경우에게 기억조차 되지 않을 만큼 사랑받지 못한 과거를 그만 흘려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곧이어 경우는 생각했다. 이것은 우연인가? 요조의 이상한 사과말 뒤에 은승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것은. 은승과 다투고 헤어진 사이 요조를 만나 마음 두지 못한 것은.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우가 은승에게로 돌아간 것은 필연이라는 믿음이었듯, 요조의 연락 후 은승이 사라진 것은 그랬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경우는 잠시 잊고 있었던 어플을 열었다. 어플은 다시 같은 사람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잠깐 함께일 때도 언제나 경우를 찾아오던 요조였다. 이제는 경우가 요조를 찾기 시작했다. 닉네임, 취미, 소개문구, 사진 어디에라도 요조로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표했다. 요조가 은승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경우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요조는 경찰 준비생이었고 근근한 용돈으로 경우를 보러 오곤 했다. 잔고가 동나면 아끼는 물건들을 중고거래해서 차비를 마련했다. 경우는 끝내 요조에게 마음 줄 줄을 몰랐다. 그건 은승과의 사랑이 너무 아프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경우의 입장일 뿐이다. 요조는 요조의 사랑을 앓았을 것이다. 경우는 어플을 켠 화면 그대로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왔다. 기억은 하나의 단서를 타고 무서우리만치 가지를 뻗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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