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요조의 집 근처 역앞에 다다랐다.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잊을 수는 없었다. 은승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은승의 주변을 한없이 맴돌았던 날들을 회상한다. 요조를 만나러 왔음에도 경우는 이렇듯 은승을 생각하는 것이다. 역앞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다가오고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모르는 사람들투성이였다. 요조의 침대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뛰며 까르르 웃었고, 화장실 천장이 시옷자로 기울어져 있던 것은 기억했지만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경우는 깨달았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만 바꾸어서 하나의 패턴을 반복해왔다는 것을. 그런 기만적인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경우와 은승은 애틋한 하나의 원으로 되돌아갔던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다람쥐였을 뿐임을. 쳇바퀴를 굴리기 위해서 다른 여자들을 발판 삼아왔음을, 이야기를 지속하기 위해서 이용한 하나의 장치였음을 뼈 아프게 깨닫고 만다. 이 돌아가는 쳇바퀴를 멈추고 진실로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 그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외에 속죄할 방법이 없다고 안다.
핸드폰 화면을 켰다. 어플리케이션에서 위치를 다시 잡았다. 로딩 화면이 잠깐 떴다가 사라지고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요조가 부디 가까이에 있기를 바랐다. 화면에 뜨는 모든 여자들에게 하트를 보냈다. 항해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손을 움직였다. 실시간으로 매칭된 대화창이 열렸다. 시덥잖은 인사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긴 말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였다. 그게 늘 아쉽고 쓸쓸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매칭된 대화상대가 요조인지 아닌지만이 경우가 알고 싶은 유일한 것이었다. 끝내 요조와 마주친다면, 경우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것도 정하지 않은 채 경우는 대화창에 요조의 이름을 타이핑했다.
[ 서른살, 요조를 찾습니다 ]
요조가 누군지, 찾는 이유가 무언지 물어보는 대화창들이 동시에 깜빡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요조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만 단서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하나 보였다. 경우는 대화창을 열었다. 지난 몇 년 간 요조도 사람을 제법 만났을 터였다. 확신에 차서 질문을 타이핑 하려 할 때 낯선 전화벨이 울렸다. 어플리케이션 내에 있는 통화 기능인 듯했다. 익숙하지 않은 기능이라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전화를 받았을 때 들려오는 건 요조의 목소리였다. 경우와 요조는 서로를 묻지 않았다. 요조가 말했다.
“어플로 네가 우리 동네로 오고 있다는 걸 알았어.”
“우리 만나자.”
“너를 만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줄 게 있어.”
요조와 닿기 위해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요조가 지하철역에 다녀갔다. 요조가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누르자 지하철 공용 락커가 열렸다. 거기에는 익숙한 카메라 한 대가 들어 있었다. 은승의 것이었다. 경우가 달아준 키링이 그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경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난간에 앉아 바라본 은승의 얼굴 색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여전히 붉었던가 하얗게 질렸던가. 카메라를 낚아채 창을 향해 흔들어 보였을 때 은승의 다급해진 표정만은 또렷히 기억한다. 그때 경우는 은승의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것을 질투했고, 난간의 자신보다 카메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미웠다. 은승에 대한 마음이 애증으로 변질된 건 이미 오래였다. 언제든 그립고 미치게 싫었다. 하지만 은승이 사라지고 경우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 않다면 그건 다른 문제의 이야기였다.
카메라 전원을 켰을 때 보이는 건 요조였다. 어떻든 요조는 은승과 가깝게 지냈다. 은승은 저 스스로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담기 어려워했으니까. 둘 사이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화면으로 보이는 요조는 투명하게 웃고 있었다. 뒷모습이나 발목일 때도 있었지만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보는 건 요조의 모습인데도 경우는 은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카메라 너머에서 마음을 담아서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수백 장의 사진을 넘기자 경우가 나왔다. 은승은 어쩐지 경우를 자주 찍어주지 않았고, 경우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인물사진은 경우에서 끝이었다. 은승이 대체로 사람보다 동물이나 풍경을 찍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이상 은승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근거인 양 불안을 지피는 연료로 삼았다. 요조는 언제나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너를 먼저 떠나지 않을게. 경우는 다시 깨달았다. 요조는 약속을 지켰다. 요조가 은승을 죽였다.
***
딱 한 번 요조의 집에 갔을 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식당을 하는 요조의 엄마가 집에서 항상 사골을 끓인다는 거였다. 요조는 어릴 때부터 사골을 먹었다. 지겹도록 먹었다고 했다. 주방이 꽉 차는데도 식당 주방에나 있을 법한 큰 업소용 가스렌지가 요조의 집에 있었다. 그 위에는 경우와 요조가 꼭 끌어안고 있으면 같이 들어가 서 있을 수도 있는 커다란 솥단지가 있었다. 은승은 거기서 발견됐다고 했다. 뼈만 남은 채 흐물흐물 끓여졌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솥단지에 든 은승의 뼈를 발견한 건 요조의 엄마였다. 애인과 해외여행을 다녀와 집에서 나는 훈기에 조금쯤 졸음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한 입 맛보았던가. 옆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요조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지하철역에 잠깐 나와서 카메라를 두고 간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외출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무슨 관계였는지 우발적이었는지 계획적이었는지 많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푹 숙인 고개를 들고 기자의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불안할 땐 움직여.”
경우는 핸드폰으로 뉴스영상을 봤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으로 요조는 정신건강지침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경우는 요조가 불안할 때 하듯이 바깥으로 나갔다. 겨울밤의 호수공원은 얼어 있었지만 많은 게 뚜렷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