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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알려줘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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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Sep 10. 2024

<이별시대> -1-

별희

이야기된 고통은 더이상 고통이 아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던 예술대학 벽돌건물 2층 창가로 더럽게 녹고 있는 눈바닥을 내다보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아니면 교재의 한 구절이었나. 한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졸업 이후 차마 의식할 수 없는 저편의 상처까지 길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꿈 일기를 썼다. 매일 단 한 줄이라도. 꿈 일기는 토막 난 단어들이었다가 문장이 되고 점차 짧은 이야기로 다듬어졌다. 이야기들은 수천 개가 되고 수십 권의 노트가 됐다. 다 쓴 노트는 편의점에서 주워 온 종이박스에 넣어서 책장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가끔 망상했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잠들 때서야 만날 수 있는 의식 저편의 나라고. 그러니까 깨어나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잠결의 내가 나의 반쪽이라는 생각. 꿈속의 나는 허상이 아니라 이따금 만나지만 내내 만날 수는 없는 그리운 사람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건 다른 한편에 자신의 반쯤 두고 왔기 때문이다. 영화 <헤드윅>에서처럼 한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갈라진 게 아닌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살아서는 죽은 나를 만날 수 없고 깨어서는 잠든 나를 만날 수 없다. 죽어서야, 죽은 듯이 잠든 뒤에야 나는 오롯한 내가 되는 거다.

우울, 고독, 공허 이런 단어들이 은에게는 아슬아슬한 나의 경계로 보였을 테다. 하지만 얼마전 웃음과 사랑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싶다던 나는 은을 잃었다. 정확히는 은이 떠났다. 아무런 말없이 간밤에 꾼 꿈처럼 증발해버렸다. 입천장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우울, 내가 세상을 감각하는 피부와 같은 공허를 부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건 20대 때 내가 한 부끄러운 언행은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고 부정해버리는 과오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을 앓는 나는 나의 일부도 무엇도 아닌 허깨비고 퇴마해야 사라지는 타자, 악귀라는 생각처럼. 나는 같은 잘못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은, 너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너를 지독히 괴롭혔던 너 자신의 일부가 실은 네 인생의 매듭을 풀어낼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것.

구태여 상처를 끄집어내 딱지를 벅벅 긁고 싶진 않다. 그건 너무 많이 해봤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해왔다. 더이상 나를 괴롭히는 과거는 없고 결과로 남은 내가 제일 괴롭다, 의사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을 오물 취급하고 싶은 건 아니다. 많은 일들을 겪어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만족스러운가? 10년 간 사랑을 속삭이고 미래를 맹세한 은에게서 버려진 내가? 여기서 '나'는 의식이 없는 나머지 절반까지도 포함해 말한다. 그런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서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까마득하게 잊고 며칠이고 생활을 하다가 잠들기 전에 퍼뜩 며칠 전 꿈의 한 장면이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식이다. 장면은 말로 형언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려서 풀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꿈속의 내가 크게 상심할 만한 상황이다.

나는 꿈속에서 보다 현실에서 더 외롭고 괴로운데, 꿈속에서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는 아니고 (오히려 단순하고 생생하다) 여기서 더 많이 깨어 있으며 사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된다. 여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냄새와 소음이 즐비해 그만큼 수시로 끼어드는 괴로움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은, 네가 이따금 들려줬던 꿈속의 너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험난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네 꿈 얘기를 들었지만 사실은 샘이 났다. 꿈속의 나는 혼자거나 곧 혼자가 될 둘이었으니까. 잠든 은의 순한 얼굴을 바라보며 거기의 나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애는 늘 혼자 있게 되니까) 나는 여기서 잠든 은을 오래토록 바라보고 싶었다.

때로 거기의 내가 내지 못한 화를 여기의 내가 대신 내는 일이 있어도, 그래서 내가 아득히 싫어지는 날이 와도 여기에 너랑 같이 있을래, 다짐했었다. 언제 어떻게든 이 여행이 끝나고 거기서 그애와 함께하는 날이 오면 나는 은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드는 일이 기꺼울 거라고, 꿈속에서 은을 다시 만나게 될 거라 굳게 믿었다.  은 옆에서라면 평생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 잃어버린 꿈속의 절반을 그리워하며 살아도 괜찮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태경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았다. 태어날 때부터 해가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큰 볕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붙였다. 웃기지도 않는다. 엄마는 볕을 쬐러 집을 자주 나갔다. 해가 졌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나갔다 돌아올수록 더 많이 때리는 아빠에게 다시 돌아왔다. 우리집은 여전히 반지하였으므로 집안의 습기가 엄마를 좀먹기 시작하면 또 나가겠지 했다.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뎌지는 게 괜찮아졌다는 말은 아니니까. 엄마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목 뒤가 뻐근해졌고, 돌아온 엄마가 주방을 부산스럽게 하고 있는 걸 보면 경추가 아파왔다.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아 방문을 닫고 누웠다. 해괴한 요리가 완성되면 큰 볕을 부를 것이다. 나는 자는 척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열일곱이 됐을 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갔다. 여태껏 중 가장 긴 가출이었다.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은 아빠가 만취한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자기 몸도 가눌 수 없어서 누구에게도 손대지 않은 평범한 가족의 저녁을 보냈다. 엄마는 요리를 못했다. 사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부모 손길이 닿지 않은 아이처럼 엉망인 위생상태로 학교를 다녔다. 엄마가 주방 들어가는 걸 질색한 아빠는 늘 배달음식을 시켜서 대충 먹었다. 남은 음식을 먹고 자꾸만 살이 쪘다. 면역력이 떨어져 사계절 내내 코를 훌쩍였다. 엄마가 있으나 없으나 집은 늘 더럽고 추웠다. 언제 손을 들지 모르는 아빠의 방에만 전기장판이 있었으므로 겨울에는 꾸역꾸역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가장 끔찍한 건 술을 마시지 않은 날 아빠가 퍼붓던 다정함이었다. 해장을 하다가 내 생각이 났는지 순대국을 포장해왔고 내가 다 먹어 치울 때까지 앞에 앉아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물어오는데 가증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고분고분 대답하는 수밖에 없는 내가 제일 싫었다. 엄마, 아빠는 드물게 멀쩡한 척을 했다. 전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안방 바닥에 엎어진 아빠를 뒤로 하고 엄마와 나 둘이서 밥을 먹었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개에 손은 거의 대지 않으면서 맨밥을 입에 넣었다. 거의 씹지 않고 삼키고 있었다. 어서 불편한 자리를 뜨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반지하에서는 낮인지 밤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지만 해가 질 무렵이라는 것을 알고 나가고 싶었다. 그때 엄마가 먼저 수저를 내려놨다.

“너는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없다는 게 또 집을 나간다는 뜻인지 죽어 없어지겠다는 뜻인지 가늠할 수 없어 답을 고르는 사이, 애초에 답을 들을 생각도 없던 듯 엄마는 일어서서 얇은 봄 외투를 입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세탁하지 않은 외투에서는 한번 들썩일 때마다 구린내가 났다. 나는 숨을 참았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의미 없는 물음을 던지는 엄마식 화법에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입을 다물고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좋아질 것은 없었지만 더 나빠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엄마는 커다란 운동 가방을 매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당신이 없어도 잘 살라는 것인지, 그러고도 잘 사는 나의 질긴 생명력을 비웃는 것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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