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서는 그 앞에 정리도 되지 않는 가방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 안에는 언제 쓴지 모를 영수증, 먹다 만 껌 종이, 아무렇게나 구겨진 낡은 다이어리,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오래된 립스틱까지 도대체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이걸 한데 담아 이고지고 다녔으니 어깨가 무거울 만도 했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걸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다 쏟아내고 싶진 않았다. 그럴싸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으면 누구도 이 안을 보자며 잡아채지않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냥 그럴싸한 가방을 매고 다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상담을 할 때마다 나는 그럴싸한 가방을 매고 앉아있다가 그 안에서 낡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또 다른 나의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내기를 반복했다.
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 한복판에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인파 속에 지금의 나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또다른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버려진 내가 나인지 지켜보는 내가 나인지 아니면 또다른 그 누군가가 진짜 나인지 알 수 없었다.
조각조각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깨어지는 껍데기 안에 진짜 내가 있는지도 이대로 조각조각 부서져 가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깨어지는 모든 것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서있었다. 이 경계에서 앞으로 박차고 나아가든지 스스로 부서져 가라앉든지 그것 또한 내 손에 달려있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렸다는 사실 또한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욕도, 약도 먹을 만큼 먹었지만 마음 먹기란 좀처럼 쉽지않았다.
나는 반쯤 부서진 채로 그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