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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얼 Oct 23. 2021

기도

내 기도는 늘 험한 길을 돌고 돌아 어느 벼랑 끝에 매달려 아우성치는 모양을 했다. 당장 원하는 것을 바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심사라 생각해 빙빙 돌려 이것도 저것도 다 가져다 붙여 이렇게만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 결국 내가 벼랑 끝까지 몰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이제 더 이상 빙빙 돌아갈 길도 없을 때가 돼서야 이제와 살려달라고 하기엔 신도 이제 손쓰기 너무 늦어버린거겠죠 하고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늦은 나이에 종교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정확히 왜 그러려고 했는지 그 초심은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졌다. 한겨울부터 시작해 반년 동안 성당을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기도문이며 성경책이며 하라는 건 뭐든 열심히 했다.

나는 뭐든 시키는 건 일단 잘하고 마는 사람이라 그때도 그 많은 신도중에 세례식날 앞에 나가 대표로 상도 받을 만큼 열심이었다. 


반년을 넘게 기다린 세례식날은 한 여름이었다. 세례식에 입겠다며 미리부터 네이비색 반소매 원피스를 준비했다. 최대한 정숙하고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이고 싶었다. 같이 신을 구두를 고르다 광택이 도는 실버톤의 스텔레토 힐이 눈에 들어왔다. 네이비색 원피스에 신으면 가장 잘 어울릴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금 요란한가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세례식 안내문에 앞이 뚫린 신발이나 슬리퍼는 안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색에 관한 안내는 없었으니 이건 괜찮겠지 싶어 반짝이다 못해 번쩍이는 이 뾰족한 힐을 신발장에서 꺼내놓았다. 


나는 오늘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다. 이전의 나는 이제 없고 오늘부터 주님의 자녀로,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나는 한겨울에 태어난 사람인데 이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이 이제 내 생일인 것처럼 마냥 설렜다. 세례식 마지막 행사로 성당 야외 성모상 아래서 사진 촬영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세례식 내내 하늘이 두쪽 날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결국 야외행사는 취소됐다. 

생일치곤 요란한 날씨였다. 새 옷도 곱게 단장한 머리도 기껏 골라 신은 구두도 모두 엉망이 될 만큼 세찬 폭우가 하염없이 쏟아지던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매주 빠짐없이 성당에 나갔다. 항상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기도를 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두드리며 못난 나를 책망해야 했다. 


그날도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내 탓이다. 

이 모든 일은 다 내 탓이었다. 더 잘하지 못해, 더 참지 못해, 더 노력하지 못해, 그리고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생긴 내 탓이다.


내 탓이라고 모질게 두드려 뻥 뚫려버린 몸통에 휑한 바람이 지나가더라도 그것도 모두 내 탓이다.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무릎을 꿇고 앉아 허벅지를 내리쳤다. 내 탓이라고 한참을 아우성치며 바닥을 기다시피 했다. 가슴을 무릎을 바닥을 내리치다 문득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내 탓이 아니야.




더 이상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건 그날 못난 뾰족구두를 신어서도, 하늘이 두쪽 날만큼 세찬 비가 와서도 아니다.


이건

모두 네 탓이다. 


내가 짊어진 모두의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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