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처방해 드립니다.
해를 못 본 지가 벌써 며칠째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에 집을 나서 해도 달도 다지고 사라질 시간에 돌아오기를 얼마인가 계속 반복했다.
해가 뜨고 지는지를 모르니 날이 지나는지 계절이 바뀌는지도 알지 못하고 한참이나 살았다.
평소에도 해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해를 찾아 목이 꺾여 버린 해바라기도, 푸릇한 잎을 빨리 내어야 하는 잎이 무성한 나무도 아니고 딱히 빛을 쫓는 사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빛보다는 어둠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날 도시 곳곳에 깔린 노을빛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 더 이상은 내가 버티지 못하겠다고 깨달았던 날은 초저녁인데도 대낮인 것처럼 온 도시에 해가 붉게 내려와 있었다. 대로변에 수백의 창으로 뒤덮인 빌딩들에도
퇴근길을 재촉하듯 도로에 가득 찬 차에도 어딘가 바쁘게 제 갈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빛나던 이마에도 붉게 내려와 감싸고 있었다.
붉게 물든 길을 헤쳐 걸으며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해가 이렇게 벌써 내 발끝까지 왔구나.
발끝까지 길어진 해를 보고 나니 해를 보지 못하고 지난 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져 나를 따라붙었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내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억지로 억지로 나를 따라오다 내가 가는 걸음걸음마다 앞으로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고 물고 늘어졌다. 내가 더는 해를 향하지 못하도록, 그만 뒤를 돌아 이 그림자를 보도록. 이 어둠 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너의 모든 불안과 우울을 끌어안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다시 잘 감추고 살도록.
더는 나를, 너를, 그리고 우리를 밖으로 내몰지 말라고 아우성을 치고 내 발을, 다리를, 머리를 더욱 단단히 똘 돌감아 묶었다. 그렇게 얼마 못가 발걸음을 멈췄다.
나의 어둠은 나를 한 번에 집어삼키려들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나를 물들였다. 별안간 달려들지 않고 내내 내 곁을 함께 걸으며 어느샌가 조용히 와 기대 있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나아가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속삭였다. 굳이 발버둥 치고 살점을 떼어내며 이 길을 헤져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는 이것들을 끊어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저 가만히 이 어둠을 끌어안고 이안에 잠기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라 했다.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어쩌면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고 생각했다.
엄마손에 이끌려간 병원에서 엄마는 서른 해를 넘게 키워온 다 큰딸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 선생님께 무슨 약이 든 처방 해달라고 때를 썼다.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다 이유모를 열병에 놀라 응급실을 맨발로 뛰어들어갔던 그날처럼 엄마는 엉망이 된 딸을 안은채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늘어졌다.
어디도 아프지 않았지만 어디도 성하지 않는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를 세 살짜리 그 시절 아이처럼 보는 엄마를 말릴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이 다 큰딸의 병이 약으로, 주사로 나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 기운이 나거든 밖에 나가 해를 좀 봤으면 좋겠어요 "
맥없이 풀어헤쳐진,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가까스로 몸을 의자에 걸쳐놓은 나에게 흰머리가 무성하던 의사 선생님은 약대신 햇살을 처방해주었다.
본인이 지금의 내 나이쯤일 때부터 보던 이 꼬마를 그도 이렇게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이었으리라.
엄마의 고집을 못 이기고 병원 구석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았다. 수액 한통을 다 맞는 동안 엄마는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눈도 깜빡하지 않을 기세로 나를 쳐다봤다.
아직도 엄마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 병 아닌 병을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 누구보다 더 강렬히 이 병을 낫게 해주고 싶어 했다.
3월의 끝자락이었다. 병원의 창밖은 이제 봄이 완연하다는 듯 해가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발끝까지 덮었던 이불을 조금 걷었다. 햇빛이 발끝에 살짝이 닿았다. 겨우내 얼어있던 발이 이제야 녹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