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다녔던 다양한 학원들. 태권도, 미술, 피아노. 나는 그중 태권도를 가장 좋아했다. 태권도를 너무나 좋아해 장래희망 칸에 태권도 관장님을 넘어선 태권도 총관장을 적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열매를 채우기 급급했던 피아노 학원은 언제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피아노 앞에 다시 앉게 했던 건 중학교 1학년에 있던 음악 수행평가였다.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음악 수행평가에서 리코더나 단소를 불고 싶지 않았던 나는 피아노를 선택했다. 악보 보는 방법은 까먹지 않았던 덕분에 어떤 곡을 연주할지 고민했고 나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ST를 연주하기로 정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의 악보 보는 수준과 실제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있어서 캐리비안의 해적 OST는 너무나도 과분했다. 악보를 볼 줄 안다고 해서 음들이 곧이곧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어찌어찌 악보를 읽었다고 해도 건반을 누르며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까지는 한참 부족했다. 시간도, 실력도 한참 부족한 나는 반쯤 완성된 상태로 음악 수행평가에 임했다.
당연히 만족하지 못한 상태와 만족하지 못한 연주는 아쉬움만 남았고 그렇게 내 수행평가는 끝이 났다. 그런 나의 아쉬움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 요소가 있었으니. 다음 순서인 친구가 나와 동일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곡의 반만 연주한 나와는 다르게 온전한 상태로 곡을 끝낸 친구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했을까, 투지와 투쟁심을 느꼈던 것일까, 부러움, 분노, 질투였을까. 감정이 지워진 당시의 상황을 보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쉬움과 부러움, 질투에 가득 찬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게 된다. 전학생으로 온 주인공과 당시 ‘피아노 왕자’라 불리던 남학생과의 대결 장면. 곡을 끝낼 때마다 들리는 환호. 뛰어난 연주와 환호 소리는 저 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명분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과분하기만 했던 캐리비안의 해적 OST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곡.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검은색 콩나물들의 향연. 나는 악보에 담긴 수많은 콩나물 밑에 각각의 음을 전부 적었다. 영화 속 장면을 직접 마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방학 동안 피아노를 연습했다.
그리고 다음 해 중학교 2학년.
나는 영화에서 들었던 환호를 직접 들었고 희망했던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