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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서

by 희석

1월 21일

글쓰기 모임을 향해 가는 길. 나는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모임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작년 12월 중순 독서 모임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자유 독서 한 번, 지정 독서 한 번 총 두 번의 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던 덕분에 글쓰기 모임까지 참석하게 됐다.


나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다른 분들은 어떠한 글을 쓸까


홍대에 위치한 인근 카페에 들어섰고 오후 7시에 글쓰기가 시작됐다. 오늘 글쓰기 모임에는 6명이 참석했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옹기종기 테이블에 앉아 각자 작은 종이에 글쓰기 주제로 적고 싶은 단어나 문장을 적으라고 알려주셨다.


작은 종이는 인원에 맞춰 총 6개가 나왔고 여기서 한 사람이 대표로 2개를 무작위로 고르면 종이에 적힌 키워드가 글쓰기 주제로 정해지는 랜덤 글쓰기가 오늘의 모임이다.


나는 ‘꿈’을 적었으나 아쉽게도 내 키워드는 뽑히지 못했다. 오늘 글쓰기 모임에서 뽑힌 키워드는 ‘호랑이 가죽’과 ‘돈’이었다.


글쓰기는 자유롭게 이루어져도 무관하며 두 가지 주제를 하나로 엮어서 적어도 괜찮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적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단지 놀랄 뿐이다.


호랑이 가죽???

호랑이 가죽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호랑이 가죽에 대한 견해를 적는 걸까?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는 걸까?


‘호랑이 가죽’을 적으신 분께서 이 단어에 대한 의도를 알려주셨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어떠한 것을 남기고 싶은지 오늘 참석한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호랑이 가죽’을 적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

다행이다.

이러면 훨씬 적고 싶은 게 많아지지.


비록 내가 적은 ‘ 꿈’을 뽑지는 못했으나 충분히 꿈에 관한 내용을 ‘호랑이 가죽’과 ‘돈’을 넣어 작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적었던 글이다.


ㅡㅡㅡㅡ


호랑이 가죽과 돈(부제 : 내가 남기려는 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아니 사람은 죽어서 돈을 남긴다


아니 사람은 죽어서 사랑을 남긴다


나는 그러한 돈과 사랑을 받았다.


2022년 8월 30일 그리고 2023년 4월 14일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곁과 가족의 곁을, 이 세상의 곁을 떠나셨다.


2022년 8월 30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날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셨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병원에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짐을 챙겨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정해진 이대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근조화환이 하나둘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도 괜찮은 것일까, 나는 이 소식을 내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여부를 몰라 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고 할아버지 장례식장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도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입관식.


당시의 기억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할아버지는 이렇게 차가운 상태로 계시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너무 놀라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러나 이렇게 눈물을 억누르고 참으며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할아버지께 아무런 말도, 눈물과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볼에 손을 올려 들을 수 없는, 듣기를 바라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 희석입니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자전거 타는 방법 덕분에 너무나 즐겁게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신 건강이 최고라는 말씀 반드시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인사를 들으시고 볼 수 없는 곳으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향하셨다.


불과 함께 하얀 재가 되시곤 작은 유골함에 담기셨다.


해가 바뀌고 2023년 1월 1일.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할아버지집에서 할머니와 가족들이 전부 모였다. 너무나 슬프게도 이 2023년이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지막 해라는 것을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간은 와야만 했던 것일까. 이 시간은 가야만 하는 것일까.


2023년 4월 14일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 익숙한 슬픔이 되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해 준다는 게 더욱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장례식장은 동일하게 이대서울병원으로 정해졌다. 익숙한 구조, 익숙한 맞이, 익숙한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3일간의 절차는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친구들을 장례식장에 불렀다. 내 친구들을 내 할머니께, 어머니와 아버지께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이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라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다는, 나의 삶을 증명해 주는 소중한 내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나는 그러한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이 애정을 돌려주고자 나의 꿈을 이뤄줄 독주회를 열어보자며. 그렇게 할머니 장례식장을 찾아준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독주회를 올해 열어보겠다며.


날짜, 시간, 곡, 연주홀, 나를 도와줄 친구, 찾아와 줄 사람. 모든 것들이 머리에서 이루어졌고 2023년 12월 9일 내가 세상에 태어난 12월 9일에 꿈을 이뤄줄 개인 독주회를 열었고 내 인생에서 잘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나만의 호랑이 가죽을 남겼다.


애정을 돌려준다는 건

모순적이게도 돈을 필요로 한다.


장례식장에서 받은 근조화환, 납골당 5층에 위치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골함, 연주홀 대여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돈으로 엮여있었다. 애정이 컸기에 돈도 커졌다.


내가 남기고 그리고 건네고 싶은 건 거대한 애정이지만 이 애정은 곧 돈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돈은 애정이다


애정을 보이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내가 받은 건 돈과 애정이다.


나는 받은 것을 돌려주겠단 생각으로 세상을 살 것이다.


돈과 애정을 세상에 남기려고 한다.



ㅡㅡㅡㅡ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기존에 좋아했던 것들이 뒤틀리는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면 되는 것일까


매일매일 꿈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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