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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27. 2023

결핍의 표상

바닥의 불안을 길어내며

겉과 속이 다름을 드러내며 두려움을 표상화하는 작업은 큰 상처에 알코올이 닿는 듯한 고통이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히 충분히 밝게 잘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밖에서 살기엔 매드맥스 퓨리오사처럼 전사로 씩씩하게 비치는 게 힘들 때도 있다. 그렇게 가식의 눈웃음으로 하나씩 해치우며 살아가다가 마음을 쏟아내야 하는 시간을 만나면 너무 힘들어 피가 굳는 것 같다.


큰 욕망 작은 욕구들로 용솟음치는 나의 뇌 속의 모습일까. 비껴나고 꼬이고 피하며 혼자 뭉쳐있으려는 안간힘의 시간일까. 누더기 같은 불안과 부족의 마음이 덜덜 떨리는 손을 통해 밖으로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마음을 다 내놓으라하는 미술치료 같은 그림 수업에 통곡하는 날이다.


곧 해내야 할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사실 내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치다. 결국은 잘 해낼 것이다 위안하지만 그건 시간에 무책임할지도 모르는 허공 같은 다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을 들여다보면 정해진 작은 길에서 가장 뜨거운 에너지를 모아야 할 지금, 손을 대보지도 않고 화상을 입을까 공포에 떠는 꼴이다.


저 까맣게 괴사 하는 부위를 다시 살리고자 나의 뇌 전체를 가동하는 중이다. 온도의 색깔들이 서로 뭉쳐 협력하는 중이다. 나는 그 죽은 부위를 되살려 새로운 싹을 내보내고 싶다. 그런 욕망의 지도들이며 부족과 결핍의 적나라한 비명인 것이다.


마음이 자꾸 다른 곳으로 쏠리는 것도 경계할 부분이다. 한 곳에 쏟아도 부족할 힘이 자꾸 다른 쪽을 바라본다. 나는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아닌데 주먹을 힘껏 쥐고 있어도 자꾸 내가 새어 나간다. 시간이 너무나 없는데도 자꾸 흘러 나간다. 관계에서 오는 작은 균열이 왜 나를 다 차지하려는 것일까.


다빈치 코드 같은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가며 매일의 불안이 애정이 되었다가 애착이 되었다가 사랑으로 울컥거리다가 집착으로 좌절한다. 나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운 찌꺼기를 퍼올리는 일이던가. 누구의 위로도 나 자신의 위로조차도 지금 내게는 사치다. 나는 그냥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마음이 아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할 때, 운동하러 간다. 머리를 끄고 근육을 찢으러!



그림 - 결핍의 골짜기, 만년필+수채색연필 by 희수공원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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