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자몽티에 흐드러져 펼쳐진 흐린 주황색의 자몽 슬라이스를 건져 입에 넣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몽이 독이다.
하주는 그와 이어지는 순간을 기대할 때마다 자몽을 떠올려야 한다. 어쩌면 그런 한계의 간격이 그들의 관계를 안전하게 버티게 할지도 모른다.
자몽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단 한쪽만 입에 들어가도 어느새 구부러진 혀의 뿌리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기도가 부어 숨통을 조인다고 했다. 뿌리 아래의 숨통을 조인다는 건 원래 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건가. 뿌리와 연결되는 건 고지식하다.
매일 자몽을 먹다시피 하는 하주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몽 크레이지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가 자몽 프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그에게 끌린다니 마치 죽음을 불사한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 따위를 할 때가 온 건가.
혼자 너무 갔구나 풋 웃고 있던 하주의 스마트폰 창에 빨간 점이 보였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거나 어디선가 알림이 오면 생뚱맞게 창의 왼쪽에 박혀 확인해 주길 바라는 그 빨강이었다.
하주의 스마트폰은 일 년 내내 무음이다. 세상을 향한 일방통행로다. 하주가 원할 때만 세상과 연결한다. 그게 큰할아버지이건 아버지건 은사님이건 빨간 점으로 한참 들고 다니며 연결을 할지 안 할지의 갈등이 해결된 후에야 전화나 메시지 답신을 남긴다.
사람이니 함께 사는 세상에서 조화를 이뤄야 행복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원래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혼자여도 신나고 행복한데 뭐 하러 섞이고 볶이고 갈등을 자처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도 대학 졸업 무렵 아버지가 달아준 족쇄였지만 하주는 그마저도 집에 두고 다니기 일쑤였다. 한 열흘쯤 안 가지고 다니면 집에 돌아왔을 때 영낙없이 스마트폰 옆에 아버지가 앉아 계시곤 했다.
“계집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해서 원…”
“무소식이 ㅎ…”
“희소식이란 말 하지도 말아! 몇 년 후 네가 백골 시체로 발견되면 내가 그 몇 년을 네가 무소식이었으니 안심하며 살아도 좋단 말이냐?”
“아버지, 뭘 그렇게 극단적이세요? 별일도 아닌데…”
“짐 싸! 독립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집에 들어와 살아! 별채가 비어 있으니 집세 내면서 살도록 해. 원하면 별채 삥 둘러 담벼락도 쌓아 줄 테니 맘껏 혼자 살면 되겠구나!”
2년 전 그때 이후 가지고 다니는 것만 해도 큰 일이었던 스마트폰이 지금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창이 되었다. 저 빨간 점은 자몽 프리 월드에 사는 그가 맞을까.
전화번호를 묻는 그에게 홀린 듯 번호를 알려주고는 일주일째 그저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게 하주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모아서 수도꾸 게임을 만드는 변태일지도 모른다고 이상한 상상을 할 때쯤 빨간 점이 뜬 것이었다.
하주는 흰 속껍질이 두툼하게 깎인 자몽을 우물거리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