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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01. 2024

주방 소리

[엽편소설] 불치병

. . . 똑. 똑.


어수룩한 칼잡이의 서투른 소리가 다. 새벽 배송으로 온 총각김치를 힘주어 썰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볶은 김치가 다 떨어져 가네. 어떤 김치 살까.


나는 무가 좋아.


소리가 명랑한 김치가 좋다.


힘들어.


거실 소파에 꺼져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그가 그저 서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는 게 위로가 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예리한 날이 허겁지겁 지나간 상처들, 삭았다가 덧났다가 다시 아물어도, 세상은 살모사의 눈물 천지다.


제발 질질 짜지좀 마! 따위의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의 커다란 위안이다.


그래서 곧 질척한 볼을 닦고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꾸욱 허그를 한다. 그의 붕싯한 배가 따뜻하다.


고마워요.


그가 나를 꽤 오래 비울 때 주방 소리가 더 분주하다.


치~이 치이 칙!


현미밥이야, 냉동실에.


꼭 먹어.


밥 싫어요. 너무 더워.


그러면 과일이라도 꼭 먹어.


배랑 사과랑 바나나랑 포도랑 방울토마토, 음 그리고 대추랑 흙당근도 씻어 두었어.


단거 먹고 싶을 땐 냉장고 제일 아래 칸에 곶감도 있구.


우유를 휘적거리 요거트익어시큼한 소리가 난다.


너츠도 싫어.

사과도 싫어.

곶감도 싫구,

사는 게 싫어.


그런 말을 뱉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할까.


힘든 거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


그는 내가 복용하는 약이다.


너의 불치병은 결혼이야.


그 말은 계속 주방을 차지하겠다는 의미이고 헤어지는 일 따위는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고마워해야 할까, 나는.


주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가 없는 일주일은 긴 공복의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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