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똑. 똑.
어수룩한 칼잡이의 서투른 소리가 난다. 새벽 배송으로 온 총각김치를 힘주어 썰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볶은 김치가 다 떨어져 가네. 어떤 김치 살까.
나는 무가 좋아.
소리가 명랑한 김치가 좋다.
힘들어.
거실 소파에 꺼져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그가 그저 서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는 게 위로가 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예리한 날이 허겁지겁 지나간 상처들, 삭았다가 덧났다가 다시 아물어도, 세상은 살모사의 눈물 천지다.
제발 질질 짜지좀 마! 따위의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의 커다란 위안이다.
그래서 곧 질척한 볼을 닦고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꾸욱 허그를 한다. 그의 붕싯한 배가 따뜻하다.
고마워요.
그가 나를 꽤 오래 비울 때는 주방 소리가 더 분주하다.
치~이 치이 칙!
현미밥이야, 냉동실에.
꼭 먹어.
밥 싫어요. 너무 더워.
그러면 과일이라도 꼭 먹어.
배랑 사과랑 바나나랑 포도랑 방울토마토, 음 그리고 대추랑 흙당근도 씻어 두었어.
단거 먹고 싶을 땐 냉장고 제일 아래 칸에 곶감도 있구.
우유를 휘적거리면 요거트가 익어가는 시큼한 소리가 난다.
너츠도 싫어.
사과도 싫어.
곶감도 싫구,
사는 게 싫어.
그런 말을 뱉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할까.
힘든 거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
그는 내가 복용하는 약이다.
너의 불치병은 결혼이야.
그 말은 계속 주방을 차지하겠다는 의미이고 헤어지는 일 따위는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고마워해야 할까, 나는.
주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가 없는 일주일은 긴 공복의 여행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