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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24. 2024

겨울산

그 곳

한라산 백록담의 남쪽 벽을 한참 마주 보며 서 있다가 올 것이다. 갈 때마다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안갯속을 거닐곤 하는 남벽, 하얗게 눈이 쌓였다가 푸릇푸릇 싱그러웠다가, 그렇게 그 벽은 한 번도 같은 시선으로 날 바라보지 않았다.


막막한 내 눈을 따라 안보이기도 하고 푹푹 빠지는 눈을 걸으며 몸의 힘겨움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오기도 한다. 머릿속이 텅 비고 허전하면 몸의 근육을 믿는다. 힘이 충만할 때 돋아나는 새싹처럼 그런 처음의 마음으로 그 산에 오른다.


빛의 그림자를 보며 이면을 생각하고 지친 눈에 선글라스를 쓰게 하지만 그래도 좋다. 언제나 힘차게 나를 안아주는 그곳이 내가 쉬는 곳이다.


2024년에는 몇 번이나 당일 쏠로 한라산을 다녀왔는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숫자를 세다가도 과거에 그대로 둔다. 쌓인 숫자들이 내 지난 시간을 규정하는 고착으로 다가와 답답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쓸쓸해지는 늦가을쯤부터 후텁함이 시작되는 늦은 봄쯤까지 간다. 다녀오는 남벽 사이의 한 달을 잘 살아낼 수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 고생을 하는 거야. 혼자서 은 위험하잖아. 뭐 하러 거기까지 가야 해. 야생동물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


고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는 게 어차피 도전이고 모험이지 않나. 도전이나 모험은 내가 주도하지만 '고생'은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고되고 어려운 짐이니 다른 결의 마주함이다. 사는 힘을 충전하는 것이 고생일리 없다.


혼자를 두려워하면 모두를 두려워하게 된다.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타인에 기대어 살게 된다. 의지하며 목놓는 순간 내 존재가 부스러지며 매번 자신을 찾아다니며 공허할 것이다.


하루를 가능한 만큼 끝까지 채워보면 이전과는 다른 관점의 세상이 온다. 다른 색깔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남벽은 다른 세계에서 떠오는 신비한 생명수다. 그 물을 길어다가 필요한 이들과 나누어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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