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의 <사랑>

by 수의서재

시작은 예고 없이 왔지만 희서의 시작이 준하의 시작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사람에 대한 건조한 객관화에 기대어 투쟁하듯 정의했던 관계, 그에 대한 흔들림을 인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설명이 안 되는 혼돈의 감정들이 머무는 시간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희서였다. 준하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랜 시간을 벽에 걸린 추억의 사진 마냥 멈추어 있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마음에 스멀거리며 들어왔다. 두꺼운 대리석 벽 한쪽에 이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작은 비밀의 문이 열린 듯 애써 눈 돌려오던 세상이 희서에게도 온 것이었다.


눈 부시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은 준하와 희서에게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그 아침의 찬란함이 어떤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별의 전주였는지 그땐 둘 다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저 순간을 가득 채워 받아들이는 것 밖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없었던 예민한 떨림으로 하나가 되었던 진지한 시간들이 둘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어깨를 감싸던 준하의 손이 느리게 희서의 팔을 타고 흘러 결국 손가락에서 빠져나갈 때 느낀 예리한 통증은 완벽한 순간이 이제는 더 없을 것 같은 불안 같은 거였다. 시작인지 끝인지 모를 그 순간의 분리가 신희서라는 인간을 묘한 불안으로 헤집고 있었다.


자꾸만 간절해지는 그 힘을 따라가고만 싶은 것이 유아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 완벽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배운 기억도 있지만, 그런 이론들이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지난밤이 그런 이론들을 모두 태워버린 것 같았다.


사랑의 기술이었던가. 에리히 프롬? 그저 느끼고 즐겨도 되는 그 시간에 희서는 그 옛날 독서 토론에서 논쟁으로 뜨거웠던 프롬이 생각났다. 이 불안과 비겁함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롯이 혼자였던 희서의 안전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성의 균형 따윈 없었다. 이렇게도 주관적인 뜨거운 감정이 객관화되는 것이 가능한가. 자신을 무너뜨리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세우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그 이론을 앞에 두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야. 프롬이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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