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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가을

by 희수공원

얼마간의 시간을 가을에 맡기고 벌써 겨울로 들어가려는 마음을 막아선다. 기다리는 겨울이 가을을 삼켜버리고 눈과 함께 어서 도착하기를 항상 얼마나 바라고 있었던가. 꽤나 길고 힘들었던 생활의 밀도를 안도로 보내며 어느덧 강장에 서성이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시간 뒤에는 다시 시간이 온다. 그 시간 전에도 다른 시간들이 나란하고 이내 올 시간들도 분주히 줄을 선다. 안내 방송이 들리면 사람들의 부피만큼 파동이 인다. 흔들흔들 떠밀리며 각자 매겨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그제야 차창에 무엇이 비치는지 흘깃거리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다.


빠글거릴 간을 앞두고 떠나는 길은 해방이라기보다는 다짐이다. 남은 시간에 허락되는 자유를 위한 기도이다. 지치지 않으려 가벼워지려는 몸짓이다. 아있는 동안 더 살아있으려는 꿈결 같은 희망이 다짐과 기도와 몸짓을 쓸어 담아 움직이고 있다.


생명을 위해 쏘아 올린 낙엽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 새롭게 태어나고 갈증과 고독을 견디며 성장한다. 인간이 그렇듯 나무도 바람도 별도 바다도. 지나치는 것들을 능한 만큼 눈에 담으며 아래로부터 울리는 소리로 기차가 달리면 종착역에 거주하는 다른 억양의 언어에 익숙하려 애써야 한다. 양성의 존중이라 배우고도 막상 마주하면 이질감의 갈등이니 여전히 모자라는 마음에 회초리를 든다.


몸뚱이를 두고 영혼이 떠나는 길인지 영혼은 잠재우고 몸만 움직이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 누군가 소리치며 만들었을 구겨진 인상을 떠올린다. 제대로 살아야지. 영혼을 몸에 대고 촘촘하게 한땀씩 박음질을 하고 그 어느 것도 다른 색깔로 벌어지지 않도록 단속하며 살라지만. 가을 낙엽 사이 다양한 갈증에 기어이 후두두 끊고야 마는 솔기들이다. 상상의 반항으로 울다가 웃는다 웃다가 잠든다.


기차역의 하늘에는 구름이 없다. 다들 떠나니 구름도 떠나고 하늘도 떠나고 사람들도 떠나고 나도 그렇다. 한바탕 바래지는 나무 사이를 떠돌다보면 바람 사이를 누비다 보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가을 그저 떠나는 거다. 단지 그뿐,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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