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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긴 여운

2025 김종철 詩 낭송대회

by 희수공원

있어야 할 곳과 있으면 좋을 곳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런 날이 있다.




긴 여운이 한 편의 시를 통해 왔다. 그 시낭송가가 소리 내는 단어마다 마음을 얹었다. 울리는 마음, 그 안에 자리 잡은 삶의 이미지를 그리며 현실과 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오래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어울거리는 그 까만 시간에 대한 몽환적 상상이었다. 고 김종철 시인의 '나의 잠'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갈망하는 현실의 뒤를 돌아보는 기억이 있다. 아우성치는 커다란 입이 끝없이 벌어지는 순간이 있다.


불안의 색깔들을 밟고 살아가는 낮의 뒷모습은 그 하루를 안장하는 의식으로 연결된다. 죽음의 입구를 지나 평화스러운 림보의 안개를 맞는다. '나의 잠'은 '뜰에 나가 삽으로 밤안개를 퍼내었다'는 첫 행으로 시작한다.


무의식으로만 떠돌았던 기괴한 형상들이 춤을 추고, 보이지 않는 뜨거운 흐름에 조용히 흘러나가는 핏줄 속의 열기를 꿈에서야 느끼며 눈동자를 굴린다. '눈까풀까지 매어 달렸다'는 시구처럼 당황의 형상으로 파도처럼 일렁대는 눈물을 품는다. 그 안에 서서 가만히 잠을 끝으로 밀어내는 어둠, 새벽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악몽의 품에 눌려 붉어지는 얼굴과 목과 가슴과 일상은 흐느적거리며 천장에 부딪혀 헤맨다. 까마득하게 오르다 부딪히는 보이지 않는 벽, 타고 내리는 습기의 응고는 흔들리는 그곳의 거센 삐걱거림으로 이어진다. 그 쪼개진 틈에서 올려다 보는 절망의 파편들이 하나 둘 모여 서로 점을 맞추고 선을 이룬다. 분주한 어둠을 채우며.


뼈만 남은 절망이 불을 밝히고
불면에 타다 남은 새까만 자정을
잠든 도시의 하반신에
가득가득 채웠다.

- 김종철, <나의 잠> 중에서, <김종철 시선집> p.34-35, 문학수첩, 2023


여전히 타지 않은 날것의 잠은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 그 얇은 눈꺼풀을 받치고 있는 생것의 향기는 잠들려는 도시에서 배회하고 있다. 이런 시간들을 휘적거리며 잡아 글을 쓰고 숨을 쉰다. 비린내를 따라 땅을 채우며 검은 어둠을 어루만지게 되기를 바라며 말을 다듬고 하나씩 새기는 삶이다.


많은 갈증과 채워지지 않는 것들의 향연에서 나는 시낭송가의 공명에 얹힌 내 꿈을 생각했다. 그 잠으로 들어가 기어코 밝혀지는 내면의 조각들에 머물렀다. 그 찰나의 시간에 그게 가능한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낭송가가 들려주는 영혼의 이야기가 그 한낮의 몽환을 이끌어 내 앞에 두고 갔다.


시낭송가의 삶이 배였을 시들의 목록으로도 숙연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하며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내 이야기도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김종철 시인의 가치와 철학이 배인 낭송대회에 불완전하게나마 참석 도장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대회라는 것의 본질을 따라 수상자와 비수상자라는 엇갈림은 언제나 편하지 않다. 시낭송가들의 축제로써 모두들 나란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주최와 주관의 중추인 이숲오 김종철 시낭송대회 조직위원장의 모습에서도 큰 책임감과 자부심을 보았다. 또한 후원하는 (주)문학수첩의 미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귀한 장이었다.


고 김종철 시인의 뿌리이며 근원인 곳에서의 후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 낭송, 그 가치를 계속 마주할 수 있다는 기쁜 기대와 희망을 남긴다.




▣ 사진 - 고 김종철 시인 육필 원고, <김종철 시전집> 중에서, 문학수첩,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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