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 투 비 침대 지박령인 게 틀림없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24시간 누워 있는 게 가능한 나는, 오래전부터 부모님이 인정한 늘바리였다. 표기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늘바리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전라도 방언이겠거니- 하고 추측할 뿐, 정확한 뜻은 나도 알 수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시며 한숨과 함께 늘바리라고 하셨던 걸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런 나에겐 역시나 침실이 제일 아늑한 공간일 수밖에 없는 걸까,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도 집에서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낸다. 샤워를 하고 나서 노곤 노곤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숨을 돌릴 때의 편안함이란- 최애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나를 일으킬 수 없는 마약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침대에만 있는 건 좋지 않다고들 해서 일부러 책상과 티테이블을 다른 공간에 놔두며 집 구조를 여러 번 바꿔보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 보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해보려고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감각들을 깨워야 할 때만 침대를 벗어나는 걸 보면, 폭- 하고 감성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은 역시 침대뿐인가, 라는 합리화를 해본다. 아, 엉덩이가 무거워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데, 그 비결이 침대가 되려나. 써놓고도 웃기긴 하다. 무튼,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나름의 문화생활을 편하게 즐기다 보면 또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떠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포기하기 힘든 것도 있다.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 탓일까, 침대 위에선 깊숙이 숨겨 놓은 비밀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날의 무드에 맞는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 생각에 잠기다가 끄적이기도 하고, 복잡하게 엉켜서 풀어내기 힘들 때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힌트를 찾기도 한다. 이렇게 침대 위는 나만의 작은 서재가 되어가는 걸까.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멀쩡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데도 굳이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려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참 나답다, 싶은 생각도 든다.
약속이 없으면 좀처럼 침대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의 내향적인 사람이다. 흥미를 끌만한 무언가 있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할 말 못 할 말을 다 하고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쫄보가 숨어 서 나를 괴롭히는 중이라,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날의 무드에 따라 클래식에서 트로트를 거쳐 랩까지 즐겨 듣는 나지만, 내 감성을 건드리는 건 재즈이고, 추리 장르의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좋아하지만 추리 예능은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로맨틱한 무드는 사랑하지만 뻔한 로맨스가 지겨워져 버린 나는, 내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이 시간들이 참 좋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인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지나쳤던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같은 순간을 다르게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사실, 언제 책으로 발행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렇게 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겁고 힘들다는 이유로 지나온 길 위에 놓고 온 내 감정들을 이제는 내버려 두고 싶진 않아졌다. 단단해질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침대 위의 비밀 이야기'의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침대 위에서 바지런을 떨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