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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otte Jan 22. 2022

거닐자-

살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찾아온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움직이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날. 유독 힘들었던 날들을 보내고 주말이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어서 침대 위에 누워있게 된다. 죽은 듯 살아있었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젠 일어나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본능적이라기 보단 물리적인 건가, 당연한 말인데 허리가 아프다. 무튼, 그럴 때면 나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한번 나가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은 걷고 오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랫동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부터 걷는 걸 좋아하긴 했었다. 그때는 산책을 했던 장소들마다 나무로 가득했었는데,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던 나무의 숨결 자체가 힐링이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어떻게든 바뀌는 계절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 여행을 가지 못할 때면 동네라도 산책하면서 나무들을 찾아가곤 한다.


중학교를 다닐 때 까지는 온 가족이 집 근처에 있는 큰 공원에 저녁 운동을 하러 갔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석식시간에 나무가 가득한 운동장을 산책하곤 했었다. '우리 걷자'가 아니라 '거닐자'로 시작됐던 야자 시작 전의 루틴. 무슨 이유였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저 단어가 마음에 드는 걸 보면 그때의 감성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 세상의 고민이란 고민은 다 내 것인 것 같았던 19살의 우리는 고3답게 정말 감성적이었고 예민했었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인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회, 종교, 진로와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참 많은 얘기를 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누는 이야기보다 더 심오한 내용들이 가득했던 것 같아 피식- 하고 웃음이 흐른다. 그때 생각했던 30살의 나는 모든 면에서 완성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아 완성된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멀게만 느껴진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른이라는 말이 이렇게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도 되는 건지.


지금의 상태로 20대를 다시 보낼  있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좋은 기억만 갖고  수는 없는지라 힘들게 버텨온 지난날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실  크다. 이제야 제대로 뭔가   있을 것만 같은데,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이렇게 낯설기만 한지. 아직 뭐든 시작할  있는 나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상대적인 말이지 않을까. 그렇게 체감할 수밖에 없는 , 장난이라도 오가지 않았을 법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요즘은 내가 30대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초반이라서 요리조리  피해 가지만, 정해진 사회의 흐름대로 살아가기 싫어하는 내가  버텨낼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피부에 와닿지 않던 현실이 살갗을 스쳐갈 때면, 쓰리다 못해 정말 쓰러질  같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하고 싶은  생기면 무조건 바로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기곤 했었는데, 지금은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발에 한가득 묶여있어  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버텨온 시간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가끔 너무 힘들어져 기운이 없는 날이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충전하는 시간만큼 더 단단해질 나를 믿기 때문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내가 이렇게 단단해질 수 있도록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준건 산책이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거닐었던 산책은 이제 쉽게 할 순 없기에, 온 마을이 시끄러울 때면 걱정이 많은 나를 데리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힘이 빠질 때까지 한참을 걷다 보면 걱정 많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의지가 가득 찬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산책 같아졌다. 이 산책 역시 떠나기 전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오래 걷기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달까. 오늘은 정말 침대에 원 없이 누워만 있었으니, 내일은 또 다른 나를 위해 거닐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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