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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Oct 09. 2022

난임 휴직을 신청하다

난임 일기 7

시험관 시술 일정이 어느 정도 잡혔다.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던지라 이렇게 빨리? 하는 생각에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미뤄서 뭐하나 싶어 그러기로 했다. 

일단 회사에 난임 휴가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근태 담당자가 따로 있어서 먼저 그분에게 난임 시술을 할 때 받을 수 있는 휴가에 관해 여쭤보았다.


난임 휴직 말씀하시는 거죠?


휴직? 취업 규칙에 난자 채취나 이식 등의 시술을 할 때 난임 휴가를 일 년에 3일 정도를 공가처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기에 

나는 이를 확인하려고 했던 건데, 재차 휴가가 아니라 휴’직’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의아했다.

휴가에 대해 궁금해서 여쭤본 거긴 한데 휴직도 있냐고 했더니 곧바로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난임 휴직이라는 게 따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난임 치료를 목적으로 질병 휴직을 받을 수는 있었다. 

일 년 내에서 휴직을 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일 년 더 연장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대신 휴직의 사유가 난임이기 때문에 임신에 성공하면 그 즉시 복귀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임신 초기에 조급하게 복직했다간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정기가 지날 때까지는 육아 휴직을 미리 당겨 쓸 수도 있다고 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질병 휴직은 완벽한 무급이라는 점. 

아무리 내 월급이 귀여워도 일 년 동안 아예 한 푼도 못 받을 걸 생각하면 우리 집 경제 상황에 꽤 타격이 있을 것 같아 망설여졌다. 

D의 월급만으로 사람 둘 고양이 둘의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매달 들어갈 병원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와 D는 그동안 벌이에 비해 꽤 많이 모으고 있다고 나름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결혼 이전에 각자 독립해서 살 때부터 나는 적금에, 그는 투자하는 데에 진심이었다(그는 투자도 돈을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몫이 쑥 빠지고 나면 최대 일 년 동안은 모을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게 된다.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절망적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회사 동료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무급은 아무래도 좀 부담되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시술을 한 번 해보고 정 안될 거 같으면 그때 휴직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이제 막 결혼을 한 친동생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내 일이 그렇게 몸을 많이 쓰는 일도 아니라서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휴직하라고 등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반면, 집안 어른들은 하나같이 무급이든 뭐든 돈 걱정하지 말고 그냥 휴직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임신에만 집중하라며. 

우리 부모님은 심지어 휴직하는 동안 내 월급을 당신들이 채워주겠다고 하셨다(엄마 고마워). 

그리고 D는 무급 휴직 얘기를 듣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이내 이렇게 말했다. 

“자기 8년 넘게 회사 다녔잖아. 이 참에 좀 쉬어.”


하, 가족만 놓고 보면 1:5다. 해야겠네, 휴직. 

나는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과 격려 덕분에 오래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회사가 문제였다. 

시술 일정이 대략적으로나마 잡힌 날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얘기하긴 했지만 불과 3주 전인 시점. 넉넉하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업무 특성상 대직자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대안이 없다면 공백 기간 동안 나의 직속상관이 내 일을 대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팀 팀장님은 여초 회사에 드문 남성분이다. 

그래서인지 말과 행동이 항상 조심스러운 느낌을 받곤 한다.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도 거의 없다. 일 년에 두 번 있을까 말까.


내가 회사에 내 상황을 알리고 난 다음 날, 나와 팀장님을 포함해 근태 담당자, 부장님 이렇게 네 명이 회의를 한 번 했다. 

그 자리에서 팀장님은 약간 패닉에 빠진 듯 보였다.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다가 한숨을 푹푹 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또 어색하게 웃었다. 

이해는 되었으나 얼굴 마주 보고 앉은 자리에서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니 불편했다.


부장님은 먼저 시험관 시술에 대해 당신이 잘 모르고 있다며, 설명해줄 수 있냐고 하셨다. 

정확히 언제 시술을 시작하는지, 그래서 언제부터 휴직에 들어가야 하는지, 언제 다시 복직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셨다.

시술 과정에 대해 충분히 사전 설명을 하려고 우선 월경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러자 담당 선생님이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셨다. 

부장님은 팀장님을 보며 “굳이 같이 안 들어도 될 것 같네요. 먼저 나가서 일 보고 계세요.”라고 하셨다. 

월경이 그렇게 놀랄 단어인가… 결혼도 하신 분이.


뭐, 어찌 됐든 팀장님이 회의실에서 나가신 후 나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월경 주기에 따라 시술이 진행되는 거라 확답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한 3주 뒤부터 병원에서 뭔가를 시작할 것 같다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그전부터 쉬면 좋겠지만, 만일 휴직을 하게 될 경우 지금까지의 업무도 정리해야 하고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까 최소 3주 뒤부터는 쉬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부장님과 근태 담당자는 휴직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회의가 끝난 후, 근태 담당자가 와서는 보통 일 년을 휴직하게 되면 남은 연차를 소진하고 간다고 말해 주었다. 

연차를 먼저 다 쓰고 그 후에 휴직을 해도 된다고.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개인 연차를 앞에 쓰게 되면 원래 예정했던 때보다 더 빨리 휴직에 들어가게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팀장님이 안 좋아하실 것 같다고 농담 섞어 말했다.


그러자 근태 담당자는 “아…그쵸, 쌤한테 의지를 좀 많이 하시죠, 저분이.” 하며 깔깔 대고 웃으셨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고 가셨다. 

“그래도 개인 연차니까 잘 생각해서 써요. 저분 신경 쓰지 말구. 아깝잖아요.”


개인 연차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그 감사한 마음을 받아들여(?) 나는 연차를 모두 사용한 후 휴직을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하필 생긴 지 별로 안된 터라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해서 내 연차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따져보면 원래 원했던 날로부터 고작 4일 빨리 쉬는 셈이었다.


휴직 신청서를 쓰는데 얼떨떨 했다. 

내가 휴직을 하게 되다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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