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지 Oct 09. 2022

휴직이 이렇게 어려운 건가요

난임 일기 8

한동안 내 연차를 사용하는 상황이긴 해도 사실상 휴직에 들어가게 되는 시기가 확정된 후, 이번엔 우리 팀 전체 회의가 소집되었다.

전체 회의라고 해봤자 팀장님과 나, 그리고 나와는 다른 업무를 맡은 팀원 둘까지 네 명이 전부였지만.


회의 분위기는? 말해 뭐하나. 그렇게나 침통할 수 없었다.

팀장님은 상황 설명을 마친 후, 내가 복귀하는 즉시 계약이 종료된다는 조건 하에 일 년 계약으로 대체자를 채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채용을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몇 달 동안 공백이 생길 것 같다고도 했다.


숨이 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백 기간 동안 내 업무를 누가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팀장님의 업무를 내가 보조하는 격이어서 나에게는 대직자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다른 팀원들은 내 업무를 대신 해 줄 의무가 없었고, 그렇기에 선을 확실히 그었다.

결국 회의 끝에 대체자가 올 때까지 팀장님이 내 업무를 임시로 맡기로 했다.

휴,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내 사정이 어찌 되었건 촉박한 일정으로 휴직에 들어가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에, 처음엔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를 준비했었다.

팀장님은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어떡하나… 에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이 업무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 와도 할 수 있게, 최대한 일하기 편하도록 세팅해놓고 하나하나 꼼꼼히 알려드렸는데 옆에서 계속 한숨을 쉬니 나도 점점 짜증이 났다.

특히 마지막 며칠은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다.

대역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랄까.

휴직 준비하다가 홧김에 퇴사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일을 정리하고 있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대충 하라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거라고.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저기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엄살이 좀 심한 것 같네요.

보다 못했는지 내게 한 마디 하고 가는 분도 있었다.

주변에서 알아주기라도 하니 다행이지.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봐야 그 사람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

어떤 사람을 깊이 알고 싶다면 함께 여행을 가보라고 하는 말, 모든 상황이 안정적이고 평온할 때 본모습은 진짜 모습의 반의 반도 아니라는 말은 역시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팀장님은 평소에는 친절하고 배려 있는 상사로 보였으나,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휴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휴직을 한다는 게 이런 건 줄은 몰랐다.

시험관 시술이 잘 되어 임신에 성공하고 나면 육아 휴직은 또 어떻게 받나. 눈치 보여서리.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이전 07화 난임 휴직을 신청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