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해요 혼란해
애기 젖먹이니?
애기 모유 먹었니?
젖 잘 나오니?
신종 인사인줄 알았다. 왜 가족들이 갑자기 내 가슴 사정에 이렇게 관심들이 많아지는 건지..? 젖 먹인다는 내 대답에는 ‘그래 잘했다’ 라는 칭찬이 뒤따라왔다. 안 먹는다고 했음 뭐라고 할 거였을까?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는 오줌잘쌌니? 같은 사적인 질문 같았는데 물어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이제라도 거꾸로 인사해볼까. 오줌 잘 싸셨어요? 헉 아니다 전혀 궁금하지도 않다.. 이렇게 어른들이 내 가슴 사정에 부끄럼없이 관심을 가져줄 때, 비로소 내 가슴이 이제는 젖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물건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슴이 젖이 됐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산후조리원에서 온다. 거기서는 모유수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내 가슴과 아기가 빠는 모습을 확인하고 지도해준다. 이곳은 아주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무대다. 어떻게 잘먹게 할 것인가, 그 하우투를 전수하기 위해 유방과 유두의 컨디션을 살피는 것이다. 하루 몇 번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짜내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평생 내 유두 모양에 관심을 갖기는 처음이다. 수유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수유실로 배달해주는 관리사 및 간호사들, 수유를 돕는 모유수유 전문가.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우리의 가슴이란 게 원래부터 누구나 사정을 물을 수 있는 젖이었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당당하게 드러내기. 브래지어로 젖꼭지를 가리고 다니던 평범한 여성 입장에서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더 유감인 건, 젖 이전에 가슴은 언급하기엔 비밀스러운 외설적인 무언가였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단어도 있다. 슴가. 가슴의 음절을 뒤집어 표현한 말로, 한 온라인 게임에서 가슴이 음란한 단어로 사용이 금지되자 파생되었다는 썰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때 이 말이 유행했으며, 가슴에 성적인 의미가 담겼을 때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슴가는 바깥으로 함부로 드러나면 안 됐다. 하지만 한번 드러나면 누구나 한번씩 므흣한 눈길을 보냈다.
2020년 7월 1일자로 인터넷 한겨레21 홈페이지에 발행된 ‘[몸생물학]젖샘은 인간을 규정한다’에는 슴가와 젖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의 한 조각이 묘사되어 있다.
“인간을 젖먹이 동물로 구분한 뒤, 인류의 진화와 발전 과정에서 수유의 중요성이 전면에 나왔던 적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인간 진화에 말을 보탰던 이들이 주목한 것은 젖가슴의 생물학적 기능보다는 심미적 기능,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성의 성적 취향이었습니다.”
글에 따르면 인간은 일찍이 칼 폰 린네라는 스웨덴의 분류학자에 의해 포유동물로 분류됐다. 그런데 위 문장대로, 사람들은 수유에 주목하기보다 모양새에 더 주목했다. 급기야 인간의 가슴이 성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기도 했다. 발정난 동물들이 엉덩이 색이 변하거나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인간 가슴도 그렇게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경우 직립보행을 하면서 머리 위치가 올라가다 보니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이 발달했다는 것. 같은 글에서 이는 진화의 기본 방향과도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말한다.
하여튼 내 가슴은 지금 출산과 함께 갑자기 젖이 됐고, 슴가와 젖 사이에서 나는 혼란해진다.. 가슴을 막 드러내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젖은 막 드러내도 되는 건가..? 어른들과 함께 여자 가슴에 대해서 막 시원한 토크를 하고 그러지는 않는데, 젖에 대해서는 막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슴가든 젖이든 둘 다 내 가슴이란 건 변한 적이 없잖아...? 둘을 어떻게 딱 떼어놓고 구분할 수 있는 건지. 사실 슴가가 되는 것보다 젖이 되는 편이 자연스럽고 공정한 것 같지만, 사정은 좀 복잡하다. 왜냐면 둘 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어떤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결국 내 가슴은 나에겐 언제나 항상 그저 신체 일부에 불과했으나, 세상의 눈에는 슴가 아니면 젖이었다. 임신, 출산 전에는 은밀하게 말해지는 음란물이었으나 출산 후에는 누구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동네북이 되었다.
그것 참 유감이다. 내 딸은 이런 유감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