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던 날 <4>
나는 무통주사를 맞던 시점부터 이미 좀 정신이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없었다. 내 통증과 극도의 허기만 존재할 뿐이었다. 아침 6시에 병원에 도착하고부터 분만하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 했다. 분만을 하다 혹시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기에, 의료진은 먹을 것을 권하지 않았다. 물을 조금 마셨지만 너무 배고프고 목이 말랐다.
정신 없는 와중에 의사가 왔다가고, 분만실로 나를 옮기고, 힘을 주라고 했다. 난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냥 아프군, 힘을 주라고 하니까 줘야겠군, 배가 너무 고프고 너무 피곤하군,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내 몸과 내 몸밖으로 아기를 꺼내려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조산사가 힘차게 소리를 질러대며 나를 격려했다. 산모님 힘주세요, 조금만 더 힘주세요, 저를 따라 힘주세요, 이제 다 됐어요! 헬스 트레이너는 저리가라였다. 미국식 스피닝 소울 사이클 같은 헬스클럽 생각이 났다. 거기서 스피닝을 하면 이런 기분일 거야.. 죽을 것 같은 데 조금만 더 하라고 선생님은 태연자약하게 외치겠지. 세상에 조산사만큼 고양감을 주는 도우미는 없는 것 같다.
힘을 주면서 너무 피곤했다. 힘을 한번 주고 나면 자고 싶었다. 얼마나 더 줘야 하는 거지,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 힘들어 다 때려치우고 자고 싶었다. 정말 좀 자고 싶었다. 제발 나좀 내버려두세요.. 피곤해요.. 배고파요.. 그런데 그때, “머리가 보여요”라고 저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의사선생님이 오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금방 의사가 내려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회음부를 절개하는 것 같았다. 그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지금 나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배가 아팠다. 아기를 밖으로 빼내야 했다. 그리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렸다. 의사는 또 자상한 선생님 느낌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난 여전히 한번 힘을 주고나면 잠을 자고 싶어졌다. 다 필요 없고 지금 누워서 당장 뻗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지독하게 격렬한 격려와, 아 젠장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힘을 줬다. 주변의 격려는 말이 격려지.. 혼이 나는 것도 같았다. 너무 정신 없었다. 아기가 목만 나온채로 나는 힘이 빠져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 또한 나를 몰아부쳤다.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 안난다. 그냥 현장에서 하라는 대로 힘을 줬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라고 했는데, 그 타이밍도 알려줬다.
그리고 곧, 뭔가가 쑥 밑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쑥 빠져나왔다. 아기일 것이었다. 후련했다. 하지만 정신은 없었다. 약에 취한 것도 같았고 극도의 피로감에 취한 것도 같았다. 의료진이 남편을 불러 탯줄을 자르게 했다. 탯줄이 잘린 아기는 빠르게 옆으로 옮겨졌고, 간호사가 아기의 건강상태를 이것저것 체크하는 듯했다. 의사가 아기가 태어난 시간을 말해줬다. 4월 5일 오후 5시 6분. 양수 터지고 약 11시간 만이었다.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도 아 이제 끝났구나, 아기를 보겠구나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태반을 빼내야 한다며 의사가 내 배를 막 눌러대는 통에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아기를 낳는 것보다 의사가 배를 눌러대는 게 더 아팠다. 안그래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혼이 쏙 빠졌다. 나는 어떤 의지를 가질 수도 없었고, 그냥 분만실의 의료진이 움직이는 대로, 그 물살에 휩쓸린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정신 없는 와중에 드디어 아기가 내 품안으로 왔다.
“아이 따뜻해.”
아기를 안은 나의 첫 한마디였다. 아기가 수건 같은 데 쌓여 있었지만 따뜻했다. 와, 체온이구나. 사람이구나. 초음파로만 보던 그림자 같은 생명체가 정말로 사람이 되어 나타났구나. 아기는 퉁퉁 불어서 귀엽거나 예쁘지는 않았다. 빨갛기보다는 좀 허연 것 같았다. 주름도 많아보였다. 너무너무 작았다. 그런데 정말 따뜻했다. 눈물이 좀 나오다 말았다.
품에 왔던 아기는 금방 누가 데려갔다. 나는 휠체어로 옮겨졌다. 분만실은 빠르게 정리됐다. 의사가 고생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준 것 같다. 연극 하나가 끝난 것 같았다.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지고, 배우는 퇴장. 그리고 우리 모두 현실로.
분만실 퇴장과 함께, 나는 아기를 낳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