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수박을 낳는 기분은 아닐 거야

아기 낳던 날 <2>

by hee

아기를 낳기 전엔 아기를 낳는 건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예전에 누군가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수박이 코에서 나오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TV 같은 데서는 진통의 고통 때문에 남편의 머리털을 쥐고 흔드는 여성의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험담이나 이미지들은 겁을 집어먹기에 충분했다.


아기를 낳는 고통 중에는 진통도 있고 아기가 나오는 순간에 따르는 고통도 있다. 낳기 전에는 다 뭉뚱그려서 어쨌든 되게 아프고 힘든 일처럼 생각됐다. 아기를 낳는 당일, 소위 말하는 자연분만이란 걸 하는 한, 그것은 현실이 되어 하나하나 구체적인 고통으로 올 것이었다. 살면서 간접적으로 학습해온 출산의 고통에 대해 막연하게 두려워 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별로 생각보다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내가 처한 현실을 빠르게 수용하고 있었다. 걱정해봐야 소용 없다, 그냥 낳아야 한다. 두렵지도 않았다. 왜냐면 두려워 하기엔, 그냥 현실이었으므로. 두려움은 실제 닥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긴다. 실제로 눈앞에 닥친 일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현실일 뿐.


아기를 낳는 방식을 둘러싸고 몇몇 여성들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뭐 그것만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아니다.)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배를 가르는 수술로 아기를 낳는 걸 제왕절개라 하고, 산도로 아기를 낳는 걸 자연분만이라고 한다. 원래는 산모나 아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하고 실행하지만, 이제는 의사의 권고 이전에 산모가 선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굳이 자연분만을 선택하는 이도, 자연분만을 넘어 자연주의 분만을 선택하는 이도 있다. 자연주의 분만은 약물, 시술 등의 의료적 개입을 전혀 하지 않고 출산하는 방법이다. 자연분만에서는 분만을 유도하는 촉진제, 통증을 완화하는 마취제 등을 사용하고, 제모나 관장, 회음부 절개 등의 시술 조치를 한다. 자연주의는 그저 산모를 도와주는 전문 조산사만 있다. 아기를 낳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민을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자연주의 출산은 보편적인 방법은 아니어서, 주로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고민하는 산모가 많다.


그런데 은근히 자연분만이 우월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전에 출산드라라는 캐릭터가 자연분만, 모유수유 같은 구호를 외쳤던 게 생각이 났다. 그분은 당최 왜그랬을까..? 요즘도 드라마에, 응급 상황이라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자연분만을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모습 같은 게 그려진다. 좋은 시어머니들도 많을 텐데 그런 여성 대립의 구도가 계속 그려지는 것도 안타깝고 그런 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안타깝다. 시어머니나 남편이 아니더라도, 산모 스스로 그렇게 꼭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임신 초반엔 제왕절개를 생각했었다. 주변에 제왕절개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강력히 추천했다. 현대 의학을 신뢰하고 몸을 맡기는 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날짜를 정해서 수술할 수 있다는 점, 진통을 하지 않고 낳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자연분만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궁금했다. 호기심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지만... 내 몸을 원래의 기능대로 사용해보고 싶었다. 자연주의 분만도 아니고 무통주사도 있는 마당이니, 정말로 수박 낳는 느낌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리고 나는 아기를 낳다 죽을 운명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현대 의학을 신뢰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편이어서 자연주의 분만은 고려하지 않았다. 겪고 보니 하루종일 의료진에 휘둘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이 아기를 낳는 수동적인 분만이기는 했다. 자연주의 분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됐다.


하여튼 그래서 제왕절개를 선택하지 않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상황이 안좋아지면 의사가 수술을 결정할 것이었다. 그렇게 의료진에 몸을 맡겼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자연분만을 하게 될 터였다.


그에 따라 나는 그 아프다는 '진통'을 일단은 겪게 될 것이었다. 분만촉진제를 맞은 후 나는ㄴ 어쩐지 통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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