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던 날 <1>
뭔가가 팡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얇은 막이 그 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윽’ 소리를 내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워 있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몸이 한순간에 튀듯이 일어나졌다. 순식간에 속옷과 바지가 흠뻑 젖었다. 부랴부랴 시계를 봤다. 새벽 여섯시께였다. 처음 겪는 일인데도 한번에 이해가 됐다. 오늘 아기를 낳겠구나 라는 사실이. 양수가 터진 것 같았다. 아직 아기를 품은 지 35주 2일, 예정일까지는 약 5주나 남아 있었다. 뒷목이 저릿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남편을 깨우는 일이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병원 가야될 것 같아”
남편은 잠도 덜 깬 채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아 어떡하지, 차를 집앞으로 가져와야 되나. 괜찮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흠뻑 젖은 옷을 대충 갈아입은 나는 반대로 어쩐지 갑자기 침착해졌다. 옷을 갈아입을 테니 우선 병원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과 산후조리원에 들고갈 가방을 싸라고 했다. 그런 다음 주차장에서 집 앞으로 차를 가져와. 가방에 들어갈 물건 중에 꼭 필요한 건 내가 이미 어느 정도 준비해둔 터였다.
남편이 차를 가져오는 동안 나는 현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양수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갑자기 한 번에 왈칵 쏟아져서, 뱃속의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내에 아기를 낳아야 한다던데. 아니 세상에 이렇게 아기를 낳게 될 줄이야. 아니 언젠가는 낳을 거긴 했지만 이럴 줄이야! 그렇지만 조금 불안한 마음만 있을 뿐 엄청나게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느긋하게 남들의 출산 후기를 읽었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5주, 그러니까 한 달이 넘게 남았으니 나름 여유 있었다. 가진통과 진진통을 어떻게 구별하고 어느 타이밍에 병원에 가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어느 정도 진통이 진행돼 자궁경부가 열려야 병원에서도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나한텐 그런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그냥 출산을 위한 고속도로에 나앉았다. 양수가 터져버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 낳아야 한다. 상상보다 더 급작스럽게 찾아온 디데이였다.
남편이 차를 끌고 데리러와 자동차 앞좌석에 앉을까 하다가 뒷좌석에 누워버렸다. 그래야 양수가 조금이라도 덜 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래도 병원에 가고 있으니 그때부터는 마음이 조금 놓이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뒷좌석에서 35주 조산아 이야기, 양막파열로 출산한 이야기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병원에서 만난 담당의는 예상대로 “양수가 터졌으니 오늘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 10주 무렵부터 약 2주 간격으로 나의 임신 상황을 봐온 터였다. 담당의는 말수는 적지만 묻는 말에는 친절히 답해주는 사람이었다.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와 이미지가 닮았다. 과묵하지만 어딘지 신뢰가 가고 따뜻했다. 병원에 도착한 게 6시 반쯤. 담당의를 만난 건 9시쯤이었다. 그 전엔 당직의와 간호사가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그 사이 몇몇 가족은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걱정했다고 남편이 전했다. 35주 2일이면 예정보다 5주나 일찍 나오는 것이었다. 37주 미만에 출산을 하는 경우 조산이라고 한다. 조산하는 경우 아기에게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대표적인 건 폐호흡을 잘 하지 못 하는 경우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그런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기가 덜 자란 채로 나오는 것이다 보니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남편도 내심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내 의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결정했다. 병원을 옮기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검사 후 4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게다가 생판 처음보는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고 생각하니 그게 더 걱정이 됐다. 이미 오랜 기간동안 봐온 담당의와 출산을 하고 싶었다. 침착하고 따뜻한 그의 성정이 그날은 더 의지가 됐다.
담당의는 최근에도 35주, 36주에 출산한 아기들이 건강하게 나왔다며, 내 아기도 건강할 거라고, 하지만 가족들의 걱정도 일리가 있으니 정 걱정이 되면 병원을 옮기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혹시 아기가 문제가 있으면 어느 병원으로 어떻게 전원이 되는지를 물었다. 담당의가 확인해줬고, 나는 계속 진료받던 병원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나는 사실은 내가 더 중요했다. 아기 걱정은 좀 뒤로 미뤄둔 상태였다. 아기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담당의도 괜찮을 거라고 했고, 나도 일단은 나 좋은 대로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 아기가 잘못됐으면 어땠을까 아찔하기도 하다. 그때 나는 정말로 지금 당장 아기를 낳아야 하는 내가 더 중요했다.
나중에 직장 선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운이 좀 좋았던 것도 같다. 선배 또한 35주에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는 분만 전문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고, 담당의가 괜찮을 거라 했지만, 그 선배의 아기는 결국 응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전원해 인큐베이터에서 약 2주가량 머물렀단다. 그걸 생각하면.. 어쩌면 나도 무모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천운이려나. 하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그 결정은 후회하지 않았다. 출산하는 동안 마음은 편했으니까..
전원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10시 20분, 병원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그 사이 초음파 검사, 태동 검사 같은 걸 했다. 내진이란 것도 처음 했다. 내진은 의사가 질에 손을 넣어 골반 상태나 자궁 경부의 경도나 길이,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등을 살펴보는 검사다. 아프기 때문에 많은 산모들이 싫어하는 검사이기도 하다. 사실 임신 중반까지도 나는 그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나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소가 많았다. 당시 아빠의 주업이 축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집 바로 옆에 축사가 있었는데 가장 많을 때는 한 200마리까지 됐나보다. 사료 값은 높아지고 소 값은 떨어지자 정부는 축산업에 폐업지원금을 주기 시작했고, 아빠도 그때 축산업을 접어 지금은 축사 공간이 텅 비어 있다. 하여튼 그 당시 우리집 소들이 간간히 송아지를 낳았다. 한번 그 광경을 본 적이 있었는데, 수의사가 소의 산도에 손을 집어 넣는 걸 본 기억이 남아 있다. 내진을 당하면서 나는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소는 송아지를 낳고 나는 사람을 낳는구나.. 그런데 소나 인간이나, 아이를 낳는 것에선 우리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그렇게 동물처럼 뱃속이 휘저어지고 한 2-3시간 후부터 그 악명 높은 수순, 진통이 시작됐던 것 같다.